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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시원에 사는 여덟 명 중 단 한 명도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고시원 기담』이 처음 꺼내는 사실이 이것입니다. 저는 이 문장을 읽고, 이틀 동안 업무 때문에 모텔에 머물렀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미로 같은 복도를 걸으면서 아무도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모르길 바랐던, 그 이상한 마음이요.



유령처럼 산다는 것 — 고시원이라는 공간

고시원이라는 공간을 흔히 '가난한 사람들이 잠깐 머무는 곳'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인식이 꽤 단순했다고 느꼈습니다. 고문고시원의 원래 이름은 '공문고시원', 즉 '공부의 문'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간판의 글자 하나가 떨어져 나가면서 '고문(拷問)고시원'이 되어버렸죠. 작가가 이 설정을 그냥 넣은 게 아닐 겁니다. 공부를 향해 달려가던 공간이 어느 순간 고통의 공간으로 바뀌어버린 한국 사회의 축도, 즉 더 큰 사회의 모습을 작게 압축한 상징으로 읽혔습니다.

이 소설은 옴니버스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옴니버스란 독립된 이야기 여러 편이 하나의 무대나 세계관을 공유하면서 나란히 이어지는 서사 구조를 말합니다. 단편들이 느슨하게 묶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사건으로 수렴된다는 점에서 단순한 단편집과는 다릅니다. 각 방의 주인공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옴니버스 안에서 움직입니다.

제가 직접 읽어보니, 이 구조가 생각보다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방이 바뀔 때마다 이야기가 바뀌는데,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옴니버스 소설은 결말로 갈수록 연결고리가 억지스럽다는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그 연결이 꽤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각 이야기가 독립적으로도 완결성을 갖추면서 동시에 전체를 향해 수렴한다는 것, 계속해서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 공문고시원 → 고문고시원: 간판 하나로 공간의 성격이 바뀌는 상징적 설정
  • 옴니버스 구성: 추리·SF·무협·스릴러 등 장르별로 독립된 이야기가 하나의 결말로 수렴
  • 2019년 세종도서 교양 선정, 서울신문 2018년 8월 추천도서 (출처: 교보문고)
요약: 고시원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소외와 고통을 압축한 상징적 공간이며, 옴니버스 구성은 그 공간의 다층성을 장르별로 효과적으로 풀어낸다.

무림과 취업 사이 — 313호 편의 이야기

여러 이야기 중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건 313호 '편'의 이야기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협객(俠客), 즉 약자를 돕고 불의에 맞서는 무협 세계의 의로운 인물처럼 살고 싶었던 청년이 취업이라는 현실의 무림 앞에 섰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그린 이야기입니다. 풍자의 밀도가 꽤 높았습니다.

취업 고수가 편에게 가르쳐준 취업 무림 최강의 기술이 '지인소개'와 '낙하산공'이었다는 대목에서는 웃으면서도 씁쓸했습니다. 낙하산공이란 실력보다 인맥이나 배경으로 자리를 얻는 방식을 무협 기술처럼 이름 붙인 것입니다. 편은 고수의 도움으로 면접까지 올라갔지만, 전에 혼내줬던 바로 그 사람이 면접 회사 사장과 친분이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현실이 이렇습니다. 의롭게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 구조가 더 많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장르소설은 주제의식보다 오락성이 앞선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대목이 어떤 정통 문학 소설보다 더 직접적으로 현실을 건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이야기는 '설명'보다 '사건'으로 보여줄 때 훨씬 날카롭게 꽂힙니다. 편이 좌절하면서도 의지를 꺾지 않기를 저도 모르게 응원하고 있었는데, 그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는 것 자체가 이 소설의 힘이라고 느꼈습니다.

요약: 313호 편의 취업 무림 이야기는 장르적 상상력을 통해 능력주의와 인맥 구조의 불공평함을 가장 날카롭게 비틀어낸 대목이다.

괴물을 이기고 나서 — 결말이 현실적인 이유

이 소설의 결말을 두고 "해피엔딩이 아니다"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이 결말이 훨씬 정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310호에서 자라나던 괴물, 그리고 고시원 전체를 잠식해가는 어둠을 여덟 명의 잔류민들이 힘을 합쳐 막아냅니다.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것 같던 사람들이 하나로 뭉쳤을 때, 절로 박수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괴물을 쓰러뜨린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고시원은 타버렸고, 여덟 명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이게 현실적인 결말입니다. 집단적 서사, 즉 공동체가 함께 위기를 극복하는 이야기 구조에서 흔히 나타나는 '그 후 모두 행복했다'는 공식을 이 소설은 따르지 않습니다. 집단적 서사란 개인이 아닌 집단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며 성장하는 이야기 방식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더 오래 남습니다.

제가 특히 마음에 들었던 건 고양이 이야기, 목차의 '비정묘시(非情猫詩)' 파트였습니다. 고시원 사람들을 도와주던 고양이가 사실 이전에 그 자리에서 살다 간 사람들의 영혼을 담고 있었다는 설정은, 소설 전체에서 가장 따뜻한 순간이었습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돕는다는 모티프, 즉 이야기 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상징적 주제 요소가 이렇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이 소설에서 처음 실감했습니다. 세종도서 교양 부문에 선정된 이유가 단순히 장르적 완성도 때문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출처: 세종도서 공식 사이트).

요약: 괴물을 물리쳐도 세상은 그대로라는 현실적 결말과, 고양이에 담긴 영혼이라는 따뜻한 모티프가 이 소설의 주제를 가장 깊은 층에서 완성한다.

자주 묻는 질문

Q. 고시원 기담, 무서운 소설인가요? 공포가 강한 편인가요?

A. 일반적으로 '기담'이라는 단어 때문에 공포소설로 오해하는 분들도 있는데, 제가 읽어보니 공포보다는 장르적 상상력이 더 강한 소설입니다. 유령, 초능력, 무협 등 기이한 요소들이 등장하지만, 그 기이함은 현실 풍자와 인간 연대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무섭다기보다 쓸쓸하고 따뜻한 소설에 가깝습니다.


Q. 옴니버스 구성이라면 순서대로 읽어야 하나요?

A. 각 이야기가 독립적으로도 완결성을 갖추고 있어서 어디서 시작해도 읽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각 이야기 안에 심어진 복선들이 후반부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순서를 건너뛰면 그 수렴의 쾌감을 절반쯤 놓치게 됩니다.


Q. 고시원에 살아본 적 없어도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인가요?

A. 저도 고시원에 살아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밀도의 공간, 아무도 내 존재를 모르길 바라는 그 감각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겁니다. 그 감각이 있다면 충분히 읽힙니다. 고시원 경험 여부보다 '소외'와 '연결'이라는 감정에 대한 감수성이 더 중요한 소설입니다.


Q. 비정묘시(고양이 이야기)는 따로 읽어도 되나요?

A. 전체 맥락을 알고 읽을 때 고양이에 담긴 영혼의 의미가 훨씬 크게 다가옵니다.


결론

『고시원 기담』은 장르소설의 껍데기를 쓰고 있지만, 그 안에는 꽤 묵직한 현실 인식이 담겨 있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추리, 무협, SF 등 다양한 장르 문법으로 풀어내면서도, 결국 하고 싶은 말은 하나입니다. 지척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를 잊지 말자는 것. 저는 그 메시지가 억지스럽지 않게 전달된다는 점이 가장 좋았습니다.

고시원이라는 공간이 낯설게 느껴지는 분이라도, '아무도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몰랐으면 하는' 그 감각이 있다면 이 소설은 분명 꽂힙니다. 옴니버스 장르소설이 처음이라면 이 책이 꽤 좋은 시작점이 될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17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