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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뉴스를 보다 문득 손을 멈춘 적이 있습니다. 또 어딘가에서 폭염 기록이 깨졌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과학 상상화에 그렸던 날아다니는 자동차나 해저도시는 어디 갔는지, 막상 현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답답함이 채 가시기 전에 집어 든 책이 바로 안전가옥 앤솔로지 〈대멸종〉이었습니다.



앤솔로지 〈대멸종〉이 담고 있는 것들

〈대멸종〉은 2018년 겨울 안전가옥 스토리 공모전 수상작 다섯 편을 묶은 앤솔로지입니다. 여기서 앤솔로지란 여러 작가의 단편을 하나의 주제로 엮어 출간한 작품집을 뜻합니다. 안전가옥이 이미 〈냉면〉으로 첫 앤솔로지를 선보인 바 있으니 이 책은 두 번째 시도인 셈입니다.

수록작 다섯 편은 공통적으로 '한 세계의 종말'을 다루지만, 장르는 제각각입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저승 신화를 끌어온 판타지가 있는가 하면, 멀지 않은 미래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Science Fiction), 그리고 미스터리 스릴러의 색채까지 넘나듭니다. 저는 처음에 '멸종'이라는 키워드가 다소 무겁게 느껴졌는데, 실제로 읽어보니 이야기마다 결이 달라서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특히 심너울 작가의 단편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는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마켓의 북투필름(BOOK TO FILM) 프로그램에 선정되었습니다. 북투필름이란 영상화 가능성이 높은 원작 도서를 발굴해 영화·콘텐츠 업계 관계자들에게 소개하는 마켓 프로그램입니다(출처: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사이트). 그 결과 토리코믹스(ToryComics) 어워드까지 수상했으니, 단순한 공모전 당선작을 넘어 영상 콘텐츠로서의 가능성까지 인정받은 셈입니다. 제가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다시 읽었더니, 확실히 장면 전환이나 시각적 묘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섯 편의 수록작 한눈에 보기

각 작품의 주인공과 배경은 이렇게 다릅니다.

  • 〈저승 최후의 날에 대한 기록〉 — 저승 세계의 차사(差使), 한국 신화적 세계관
  •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 — 게임 회사 개발자, 현실과 가상의 경계
  • 〈선택의 아이〉 — 리조트에서 일하는 아이, 동화적 판타지와 생태 메시지
  • 〈우주탐사선 베르티아〉 — 우주탐사선 선원, SF 미스터리
  • 〈달을 불렀어, 귀를 기울여 줘〉 — 거대 제국의 현자와 마법사, 서사 판타지
요약: 〈대멸종〉은 판타지·SF·미스터리를 가로지르는 다섯 편의 단편 앤솔로지로, 수록작 중 하나는 부산국제영화제 북투필름 선정 및 토리코믹스 어워드를 수상한 검증된 작품집입니다.

디스토피아 시대, 이 책이 건네는 질문

솔직히 말하면, 저는 요즘 유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콘텐츠가 오히려 낯설게 느껴집니다. 어렸을 때 배운 교과서는 인터넷이 발전하면 인종·나이·직업의 장벽이 낮아질 것이라 했지만, 현실에서는 알고리즘이 정보의 편중화를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필터 버블이란 이용자가 보고 싶은 정보만 골라서 보여주는 알고리즘 효과로,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서로 다른 '현실'을 살아가게 만드는 현상입니다. 기계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동안 인간은 더 열심히 일하고 있고, 기후위기는 매년 새로운 기록을 갈아치웁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대멸종'이라는 소재가 그저 허구로 읽히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작품은 범유진 작가의 〈선택의 아이〉입니다.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막기 위해 인류가 사라져야 한다는 설정인데, 여기서 대멸종이란 지구 생물 종의 75% 이상이 단기간에 사라지는 사건을 말합니다(출처: IUCN 적색목록 공식 사이트). 지질학적으로 이미 다섯 차례가 있었고, 과학계에서는 현재 진행 중인 여섯 번째 대멸종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선택의 아이〉에서 인류 외의 생명체들은 끝까지 인류에게 선택권을 줍니다. 대멸종이 와도 인류를 살릴 수 있다고,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제가 읽으면서 가장 이상하게 느꼈던 지점은 바로 이 장면이었습니다. 만약 전제가 뒤바뀌어 '6번째 대멸종을 막기 위해 토끼가 사라져야 한다'는 상황이었다면, 인류는 토끼의 의견을 물어봤을까요. 묻지도 않고 토끼을 멸종시켰을 가능성이 99.9%라는 게 제 솔직한 생각입니다.

그런데 인류 외 생명체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인류에게 주권, 즉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돌려줍니다. 하지만 이기적인 인류는 그 선택권을 우연히, 혹은 어쩌면 필연적으로 걷어차버립니다. 결국 인류는 멸망하고 지구는 살아남습니다. 저는 읽는 내내 돌고래를 응원했지, 인류를 응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사실이 책을 덮은 뒤에도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것이 제가 이 앤솔로지에서 가장 강하게 받은 인상입니다. 재난 서사의 표면 아래에 '우리는 어떤 종인가'라는 질문이 깔려 있습니다. 재난 서사란 재해나 붕괴 상황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사회를 들여다보는 이야기 구조를 말합니다. 다섯 편 모두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예정된 끝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요약: 〈선택의 아이〉를 비롯한 수록작들은 단순한 멸망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가 얼마나 이기적인 종인지를 독자 스스로 돌아보게 만드는 재난 서사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대멸종〉은 SF를 좋아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나요?

A. 충분히 읽을 수 있습니다. 다섯 편 중 순수 SF는 일부이고, 한국 저승 신화 기반 판타지나 동화적 색채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장르 입문자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구성입니다.


Q. 북투필름(BOOK TO FILM)이 뭔가요?

A.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마켓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영상화 가능성이 높은 원작 도서를 발굴해 영화·드라마 제작사들에게 소개하는 자리입니다. 여기에 선정된다는 것은 이야기의 영상적 완성도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입니다.


Q. 안전가옥 스토리 공모전은 어떤 공모전인가요?

A. 안전가옥은 독특한 주제를 설정해 장르문학 작가들의 단편을 공모하는 출판사입니다. 매 회차마다 주제를 달리해 실험적이고 신선한 이야기들을 발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수상작은 앤솔로지로 묶어 출간합니다.


Q. 다섯 편 중 어떤 작품부터 읽으면 좋을까요?

A. 순서대로 읽는 것을 권합니다. 다만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작품은 〈선택의 아이〉였습니다. SF보다 인문학적 질문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 작품이 특히 잘 맞을 것 같습니다.


결론

〈대멸종〉을 읽고 나서 제가 얻은 건 '멸망 이야기의 재미' 그 이상이었습니다. 뉴스에서 기후변화 소식을 볼 때마다 어렴풋이 느끼던 불안감을 이 책은 다섯 가지 서로 다른 언어로 번역해 보여줬습니다. 그것도 억지스럽지 않게, 이야기 본연의 재미를 잃지 않으면서요.

디스토피아가 유토피아보다 먼저 현실이 되는 시대에, 이 앤솔로지는 단순히 세상이 어떻게 망할까를 상상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예정된 끝 앞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책장을 덮은 뒤에도 그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멸망 서사에 지쳐 있다면, 오히려 이 책이 해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참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2999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