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가해자가 된다는 상상을 해본 적 있으십니까? 저는 장롱면허 소지자입니다. 서울 도심에서 핸들을 잡지 못하는 이유가 단순히 겁쟁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입니다. 정해연 작가의 소설 『드라이브』는 그 공포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70대 노인 운전자의 차량에 10대 소녀가 목숨을 잃는 사고. 피해자 가족과 가해자 가족, 양쪽 모두의 일상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서늘할 만큼 세밀하게 그려낸 소설입니다.
고령 운전자 사고, 예외적 사건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교통사고는 '젊은 난폭 운전자'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찾아본 통계는 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교통사고 사망자 4명 중 1명이 고령 운전자가 낸 사고의 희생자라는 수치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여기서 초고령사회란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이 20%를 넘어서는 사회 구조를 뜻합니다. 운전 가능 인구 자체가 고령층으로 이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소설 속 가해자 노균탁은 76세입니다. 손자를 학교에 데려다주기 위해 평소처럼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오토바이를 피하려는 순간,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혼동하는 페달 오조작이 발생합니다. 페달 오조작이란 위기 상황에서 반사적으로 엑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헷갈려 밟는 현상으로, 반응 속도가 저하된 고령 운전자에게서 특히 자주 보고됩니다. 2024년 서울 시청역 사고를 포함해 수년간 이어진 여러 사고들이 제 머릿속에 겹쳐 떠올랐습니다.
60세를 기점으로 인간의 집중력, 시각적 인지 능력, 반사신경은 눈에 띄게 떨어집니다. 작가 본인도 작가의 말에서 "60세가 되면 운전을 그만둘 생각"이라고 밝혔는데, 저는 그 문장이 자기 고백처럼 읽혀서 오히려 더 믿음이 갔습니다. 그렇다면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현재 면허 자진 반납 시 지급되는 보상금은 약 10만 원 수준입니다(출처: 경찰청). 솔직히 이 금액으로는 운전대를 내려놓을 유인이 거의 없습니다. 노인에게 대중교통이 편하지 않다는 현실, 버스와 지하철에서 때로 불청객 취급을 받는다는 현실을 외면한 채 개인의 책임감에만 기댄 제도로는 한계가 분명합니다.
- 교통사고 사망자 4명 중 1명: 고령 운전자 사고 희생자
- 페달 오조작: 반사신경 저하로 엑셀과 브레이크를 혼동하는 현상, 고령층에 빈발
- 면허 자진 반납 보상금: 현행 약 10만 원 수준으로 실효성 미흡
- 초고령사회 진입: 고령 운전 인구의 절대적 증가는 구조적 문제
피해자도 가해자도, 결국 모두 무너집니다
소설 리뷰를 읽다 보면 "피해자의 감정을 잘 묘사했다"는 평이 많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읽어보니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가해자의 감정도 똑같은 무게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두 개의 앞표지가 있고 뒤표지가 없는 특이한 물성적 장치 역시 그 의도를 직접적으로 반영합니다. 어느 쪽에서 펼치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는 구조입니다.
혜정이 딸 연희를 잃고 느끼는 감정은 읽는 내내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제가 20대 때 교통사고 피해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차를 들이받은 운전자가 말을 잇지 못하고 당황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때도 저는 며칠을 멍한 상태로 지냈는데, 연희를 잃은 혜정의 세계가 어떻게 산산조각 났을지 읽으면서 제 경험과 자꾸 겹쳐졌습니다. "연희가 죽었어"라는 한 문장이 혜정의 일상 전체를 지옥으로 바꾸는 장면은, 교통사고가 얼마나 즉각적이고 완전하게 삶을 파괴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한편 균탁 역시 살아 숨 쉬는 것 자체가 형벌이 됩니다. 딸과 사위는 법원 공탁금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에 몰립니다. 균탁은 가족에게도 죄인이 됩니다. 소설은 이 두 가정의 붕괴를 나란히 보여줌으로써 독자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논의해야 하는가?'라고요.
도덕적 딜레마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해도 누군가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정답이 없는 윤리적 갈등 상황을 뜻합니다. 이 소설이 바로 그 도덕적 딜레마를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가해자를 강하게 처벌하면 그의 가족도 망가집니다. 솜방망이 처벌로 끝내면 피해자 가족은 두 번 죽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딜레마는 머리로 분석할수록 답이 없고, 오히려 소설처럼 감정의 층위에서 체감해야 비로소 문제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한국 형사사법체계에서 초범·단순 과실 교통사고의 경우 징역형 상한이 1~2년에 불과하다는 현실은(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피해자 가족에게 얼마나 허망하게 느껴질지 소설을 통해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드라이브』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쓴 소설인가요?
A. 작가 정해연은 특정 사건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은 아니라고 직접 밝혔습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소설이 완전한 허구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읽는 내내 2024년 서울 시청역 사고를 포함한 여러 실제 사건들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현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사실적인 묘사가 소설 전반에 걸쳐 있습니다.
Q. 이 소설은 피해자 편인가요, 가해자 편인가요?
A. 어느 한쪽 편을 드는 소설이 아닙니다. 뒤표지가 없고 두 개의 앞표지가 있는 물리적 구조 자체가 이를 상징합니다. 피해자 어머니 김혜정과 가해자 노균탁의 시점이 교차하며 전개되는데, 제가 읽어보니 어느 쪽 챕터를 읽든 감정이 동등하게 흔들렸습니다. 작가는 '가해자에게도 사정이 있었다'는 메시지가 아니라, '이 사고가 두 가정을 모두 파탄 냈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Q.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 제도, 실제로 효과가 있나요?
A. 일반적으로 면허 반납 제도가 있으면 자율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행 보상금 수준(약 10만 원)은 실질적인 유인이 되지 못합니다. 고령층은 대중교통 이용 자체가 불편하고, 이동 수단의 박탈은 삶의 질 저하로 직결됩니다. 제 생각에는 보상금 인상보다 대중교통 접근성 개선과 고령자 이동 지원 서비스 확충이 함께 이뤄져야 면허 반납이 현실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정해연 작가의 다른 소설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A. 『홍학의 자리』『유괴의 날』『더블』 등을 통해 인간 심리의 이중성을 다뤄온 작가답게, 『드라이브』역시 선악 구도 없이 인물의 내면을 해부합니다. 제 경험상 이 소설은 기존작들보다 사회적 의제와의 연결이 훨씬 직접적입니다. 고령 운전이라는 현실 문제를 소재로 삼은 만큼, 소설을 덮은 뒤에도 한동안 생각이 이어지는 여운이 컸습니다.
결론
저는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한동안 책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중 누가 더 불행한가를 따지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질문인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고는 두 가정을 함께 무너뜨렸고, 그 사실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는 '누구를 더 처벌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이 사고를 줄일 것인가'입니다.
고령 운전자 문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도 언젠가 나이 들고, 제 부모님도 운전을 하십니다. 『드라이브』는 그 불편한 현실에 눈을 뜨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피해자의 비통함과 가해자의 자책 사이에서 독자는 어느 한쪽에 서지 못하고 흔들립니다. 그 흔들림이 이 책이 던지는 진짜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고령화 사회, 교통 안전, 법 제도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반드시 한 번 읽어볼 만한 소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