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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밸런스 게임이 그렇게 무서운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친구들과 "평생 여름 vs 평생 겨울" 같은 말도 안 되는 선택지를 두고 웃고 떠들던 게 전부였으니까요. 그런데 김종일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밸런스 게임 지옥』을 읽고 나서, 그 가벼운 게임이 얼마나 잔인한 구조를 품고 있는지 새삼 실감했습니다.
선택의 딜레마 — "두 가지 밖에 없다"는 게 왜 지옥인가
저는 MBTI에서 N 성향 친구들이 모이면 밸런스 게임을 정말 진지하게 파고드는 편이었습니다. "30살에 죽기 vs 30000살까지 살기" 같은 황당한 선택지도 나름의 논리를 붙여가며 한참동안 토론하곤 했죠. 그런데 그럴 때마다 꼭 한 명씩은 "그런 일은 안 생겨"라고 흥을 깨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현실은 항상 세 번째, 네 번째 선택지가 존재하고, 심지어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지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소설 속 영화감독 정필규는 그 '세 번째 선택지'가 완전히 차단된 상황에 던져집니다. 딸이 납치되고, 정체불명의 인물 모로스로부터 밸런스 게임을 강요받는 이 구조는, 제가 그동안 가볍게 즐기던 게임의 본질을 완전히 뒤집어버렸습니다. 여기서 밸런스 게임이란 두 가지 선택지 중 반드시 하나를 골라야 하는 게임을 말합니다. 평소에는 상상 속 유희지만, 생존이 걸리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게임이 아닙니다. 제가 직접 읽어보니, 이 구조적 압박이 소설 전체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핵심 장치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모로스는 단순히 정필규를 괴롭히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가 제시하는 선택지들은 정필규의 과거사와 촘촘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래서 게임이 진행될수록 독자도 "왜 하필 이 선택지인가"를 정필규와 함께 추적하게 됩니다. 이 과정이 소설의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핵심입니다. 서스펜스란 독자가 결말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느끼는 긴장과 불안의 감정으로, 스릴러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서사 장치 중 하나입니다. 소설 내내 이 서스펜스가 끊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김종일 작가가 장르적 완성도를 얼마나 신경 썼는지 느껴졌습니다.
- 밸런스 게임의 핵심 공포: 세 번째 선택지가 완전히 차단된 상황
- 모로스의 선택지는 무작위가 아니라 정필규의 과거와 연결된 맞춤형 압박
- 경찰 신고 시도까지 차단되는 구조로, 탈출로 자체를 봉쇄한 설정
- 각 챕터 제목이 영화 촬영 용어로 구성돼 소설 자체가 영화처럼 읽힘
목차를 펼쳤을 때 챕터 제목들이 전부 영화 촬영 현장에서 쓰는 용어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소소하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주인공이 영화감독이라는 설정과 맞물려서, 소설 자체가 한 편의 촬영 현장처럼 느껴지는 구성이었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하루 동안 쉼 없이 내달리는 영화 같은 이야기"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학폭 서사 — 가해자가 잊었다는 사실이 더 불편했다
게임이 진행되면서 정필규의 과거가 하나씩 벗겨지는데, 그 중심에는 학교폭력 가해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단순한 스릴러인 줄 알았는데, 가해자의 무의식적 망각이라는 꽤 무거운 주제가 담겨 있었거든요. 피해자는 평생 기억하는데 가해자는 까맣게 잊고 살아간다는 현실, 제 경험상 이건 픽션 안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김종일 작가는 이 소설의 원형을 자신의 단편소설 「놋쇠황소」(『한국 공포문학 단편선 5』 수록)에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학창 시절 직접 겪고 보고 들었던 폭력의 기억을 장편으로 확장시켰다고 밝혔습니다. 이 점이 소설에 단순한 장르적 쾌감 이상의 무게를 실어줍니다. 작가가 직접 목격한 현실이 녹아 있다는 사실은, 독자 입장에서 이야기를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출처: 교보문고 도서 소개 페이지)
정필규는 결국 자신이 학폭 가해자였음을 인정하고, 그 이야기를 영화화하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이 캐릭터 아크가 소설의 또 다른 축입니다. 캐릭터 아크란 인물이 이야기를 통해 변화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정필규의 경우 게임이라는 극한 상황을 통해 자신의 민낯과 마주하게 되는 구조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약간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반성하고 공개 고백까지 한다는 설정이 나쁘지는 않지만, 현실에서 그런 용기를 내는 가해자가 과연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소설이 제시하는 결말이 다소 이상적으로 느껴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한겨레신문이 2025년 10월 4주 주요 일간지 추천 도서로 선정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단순한 킬링타임용 스릴러를 넘어 사회적 맥락을 짚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출처: 한겨레신문) 제가 직접 읽어본 소감으로는, 빠른 호흡 덕분에 읽는 내내 손을 놓기 어려웠고, 다 읽고 나서도 학폭 장면들이 한동안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밸런스 게임 지옥』은 잔인한 묘사가 많은 편인가요?
A. 스릴러 장르 특성상 긴장감 있는 장면들이 나오지만, 극단적으로 잔인한 묘사보다는 심리적 압박과 서스펜스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신체적 공포보다 정신적 공포에 가깝다고 보시면 됩니다. 공포물에 약하신 분이라도 완독하는 데 큰 무리가 없는 수준입니다.
Q. 김종일 작가의 다른 작품도 비슷한 스타일인가요?
A. 『마녀의 소녀』, 『손톱』 등 기존 작품들도 빠른 호흡의 서스펜스가 특징입니다. 이번 『밸런스 게임 지옥』은 거기에 더해 사회적 메시지까지 담아낸 점에서 작가의 장르적 진화가 느껴집니다. 기존 팬이라면 더욱 반가운 신작일 것입니다.
Q. 하루 만에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인가요?
A. 작가 본인이 "하루 동안 쉼 없이 내달리는 영화 같은 이야기"라고 표현할 만큼 호흡이 빠릅니다. 실제로 읽다 보면 챕터가 자연스럽게 넘어가 킬링타임용으로 주말 하루 잡고 읽기에 적합합니다. 중간에 내려놓기가 오히려 어려운 구조입니다.
Q.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분들이 읽어도 괜찮은가요?
A. 학폭 관련 장면이 상당 비중으로 등장하고, 가해자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트리거, 즉 특정 자극이 과거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반응에 민감하신 분이라면 읽기 전에 이 점을 미리 고려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결론
『밸런스 게임 지옥』은 저한테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남긴 소설입니다. 하나는 빠르고 쫄깃한 스릴러를 읽었다는 만족감, 다른 하나는 가해자의 망각이라는 현실에 대한 씁쓸함입니다. 두 감정이 어느 하나도 지워지지 않고 같이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이 소설이 단순한 오락 소설 이상이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밸런스 게임을 좋아하셨던 분이라면, 혹은 한국 스릴러 장편소설을 찾고 계신 분이라면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목차를 펼쳐 영화 용어로 가득 찬 챕터 제목들을 먼저 훑어보는 것도 소설을 시작하는 재밌는 방법입니다. 김종일 작가가 5년 만에 들고 온 신작이니, 기다려온 독자라면 더 말할 것도 없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