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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 번쯤은 빌어봤을 겁니다. 남이 시험을 조금 못 봤으면, 저 사람만 아니었으면 하는 그 작고 은밀한 마음. 유은정 감독의 첫 장편소설 《불행소원》은 바로 그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아티스틱 스위밍을 소재로 한 하이틴 웨트 호러로, 저는 읽는 내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계속 묻게 됐습니다.
불행소원이란 무엇인가 — 저도 처음엔 믿지 않았습니다
소설 속 '불행소원'의 룰은 단순합니다. 어떤 수영장 물을 그릇에 담을 때 타인의 불행에 대한 소원을 빌고, 그 물을 누군가의 몸이나 물건에 묻히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복을 비는 건 허락되지 않습니다. 오직 타인의 불행만이 유효합니다.
여기서 핵심 개념이 등장합니다. 바로 '웨트 호러(Wet Horror)'입니다. 웨트 호러란 물을 공포의 매개체로 활용하는 호러 장르의 한 갈래로, 물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저주·감정·욕망이 담기는 그릇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일반 슬래셔 공포와 구별됩니다. 이 소설에서 수영장은 정확히 그 역할을 합니다.
아티스틱 스위밍 팀에 소속되었지만, 듀엣을 하지 못하는 배주아가 미스터리한 수영장을 우연히 발견하고, 듀엣을 하기 위해 누군가 다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는데, 그 소원이 실제로 이루어집니다. 이후 더 많은 학생들이 수영장을 찾으면서 불행이 연속으로 현실화됩니다. "어차피 미신이잖아"라고 웃으며 빌었던 소원들은 싫든 좋든 현실이 됩니다. 점점 불행 소원에 중독되어가는 여고생들의 사이에 저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 몰입하여 소설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이틴 호러가 건드리는 것 — 질투와 욕망의 심리 묘사
일반적으로 하이틴 호러라고 하면 자극적인 사건 위주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은 조금 다른 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행소원》의 진짜 공포는 귀신이 아니라 심리에 있습니다. 네 명의 인물이 교차하며 저마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각자의 욕망들이 쌓여 어느 순간 집단 전체의 불행을 바라는 저주로 뒤틀립니다.
특히 아티스틱 스위밍이라는 소재 선택이 탁월합니다. 아티스틱 스위밍(Artistic Swimming)이란 수영과 발레가 어우려져 수영장에서 아름답게 연기하는 스포츠입니다. 수면 위에서는 완벽한 미소와 동작을 보여줘야 하지만, 물속에서는 숨을 참고 고통을 견뎌야 하는 종목입니다. 쉽게 말해 겉모습과 내면의 이중성이 종목 자체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이 수면 위에서는 웃으면서 물속에서는 서로를 짓밟으려는 구조와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그리고 아티스틱 스위밍을 통해 듀엣에 대한 집착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출처: 교보문고 《불행소원》 소개).
읽으면서 제 학창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양말이 항상 짝짝이었으면", "신발에 돌멩이가 들어가서 하루 종일 불편했으면" 하는 그 소소한 저주들. 웃으면서 빌었지만, 불안이 클수록 그 마음이 더 진해진다는 걸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소설은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들어서, 읽고 나면 불편한 감각이 오래 남습니다.
- 국가대표를 향한 집착과 팀원에 대한 질투가 뒤엉키는 배주아의 심리
- 사랑과 인정 욕구가 저주로 변환되는 각 인물의 서사
- 아티스틱 스위밍의 이중성이 소설 전체 구조와 맞물리는 상징성
- "내 등수가 오르는 것"과 "남의 등수가 떨어지는 것"의 차이가 없는 세계
결말의 방향성 — 기대와 다른 엔딩에 대하여
이 소설의 심리 묘사는 압도적입니다. 읽고 나면 "같은 상황이었다면 저는 과연 남의 불행을 안 빌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오래 남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결말의 방향은 조금 의외였습니다. 여고생들 사이에서 퍼지던 소문이 학교 전체, 나아가 도시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방식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는 학교가 싱크홀에 가라앉아 물속에 갇히는 것과 같은 재난이 일어나는 결말입니다. 초자연적결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부정수(不淨水)와 정화수(井華水) 개념이 짧게 언급되긴 합니다. 부정수란 죽음·원망·저주가 고인 물로, 옛 민간 신앙에서 오염된 우물은 죽음을 퍼뜨린다고 믿었던 데서 비롯된 개념입니다. 반대로 정화수는 이른 새벽 길어 올린 깨끗한 물로 기도에 사용되었습니다. 이 대비가 소설의 세계관 근거가 되는데, 저는 이 부분이 조금 더 충분히 다뤄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심리 스릴러로서의 밀도가 너무 높았던 만큼, 초자연적 결말이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은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여고괴담〉 시리즈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는 타당하다고 봅니다. 여고라는 특수한 공간, SNS로 증폭되는 관계의 균열, 아름다운 수영장 아래 가라앉은 욕망. 이 세 가지 요소가 맞물리며 한국형 학원 호러를 오늘의 감각으로 새롭게 확장합니다. 결말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 수 있지만, 그 전까지의 심리 묘사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불행소원 소설, 무섭나요? 호러 초보도 읽을 수 있나요?
A. 일반적으로 호러라고 하면 잔인한 장면 위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 소설은 심리적 공포가 중심입니다. 피가 튀거나 귀신이 갑자기 등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친구가 나를 저주했을 수도 있다는 의심 자체가 공포의 본체입니다. 호러 장르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심리 스릴러로 접근하면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Q. 여고괴담이랑 어떻게 달라요?
A. 〈여고괴담〉이 학교라는 공간 자체의 억압과 귀신을 다뤘다면, 《불행소원》은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등 현대적 플랫폼을 적극 활용합니다. 소문이 퍼지는 방식, 관계가 무너지는 속도가 훨씬 현대적입니다. 제 경험상 여고괴담보다 현실감이 더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Q. 아티스틱 스위밍을 몰라도 이해할 수 있나요?
A. 전혀 문제없습니다. 아티스틱 스위밍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도 소설을 읽는 데 지장이 없고, 오히려 소설을 읽으면서 이 종목의 이중성과 매력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수면 위의 미소와 물속의 고통이라는 대비가 인물들의 심리와 맞물리는 방식이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납득됩니다.
Q. 결말이 납득이 되나요?
A. 솔직히 이 부분은 호불호가 갈린다고 봅니다. 심리 스릴러로서의 밀도가 높은 만큼, 초자연적 결말이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결론
《불행소원》을 다 읽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건 결말이 아니었습니다. "내 등수가 잘 나오길 바라는 것과 내 위의 아이 등수가 떨어지길 바라는 것에 차이가 있나"라는 소설 속 한 문장이었습니다. 그 질문에 선뜻 "있다"고 대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심리 묘사에서 압도적인 소설입니다. 결말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독자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지만, 그 전까지의 서사 밀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경쟁과 비교가 일상인 시대에 관한 심리 소설로, 어떤 관점에서 읽어도 유효한 작품이라고 봅니다. 마지막 장을 덮고도 수영장 물이 내 몸 어딘가에 묻어있는 감각을 경험하고 싶다면 한번 직접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