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기숙사에서 혼자 불 끄고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제 방이 완전히 낯선 공간처럼 느껴졌던 적이 있습니다. 전건우 작가의 신작 『어두운 집』은 바로 그 감각에서 시작합니다. 그 서늘한 감각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계속 떠올랐습니다.
도깨비터 위에 세워진 집, 그 팩트들
『어두운 집』은 전건우 작가의 '어둠 3부작' 마지막 편입니다. 『어두운 물』, 『어두운 숲』에 이어 이번에는 '집'이라는 공간을 무대로 삼았습니다.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세 주인공, 사이코메트리 작가 민시현과 무당 윤동욱, 옥도령이 다시 등장합니다.
여기서 사이코메트리란 물체나 장소에 남겨진 감정·기억을 손으로 접촉해 읽어내는 초감각적 능력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민시현은 공간에 깃든 과거의 잔상을 몸으로 직접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그런 능력을 가진 인물이 저주받은 집에 발을 딛는다는 설정 자체가 이미 숨이 막힙니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공포 유튜버 '옥도령'의 실종입니다. 그가 촬영하러 갔던 곳이 바로 '아귀의 집'으로 불리는 버려진 타운하우스입니다. 민시현과 윤동욱은 그를 구하기 위해 도깨비터로 향합니다. 그리고 과거 시점으로 돌아가 아귀의 집이 되기 전, 그 집으로 이사 온 수영네 가족은 정체 모를 환영과 기괴한 소음에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이 소설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도깨비에 대한 재해석입니다. 도깨비란 한국 무속 신앙에 등장하는 초자연적 존재로, 일반적으로는 장난기 많고 익살스러운 이미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두운 집』의 도깨비는 전혀 다릅니다. 인간의 기운을 빨아먹고 인두겁을 쓰는, 즉 사람의 껍데기를 뒤집어쓰는 포악한 이물로 그려집니다. 여기서 이물이란 인간도 귀신도 아닌, 세계의 경계 밖에 존재하는 낯선 존재를 뜻합니다. 저는 솔직히 도깨비 하면 방망이 들고 씩 웃는 이미지밖에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이미지가 뒤집혔습니다.
아공간이라는 개념도 등장합니다. 아공간이란 현실 공간과 겹쳐 있지만 인간이 통상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평행한 차원의 틈새 공간을 의미합니다. 옥도령이 사라진 것도 모두 이 아공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순간을 작가가 아주 세밀하게 포착해냈습니다.
『어두운 집』의 또 다른 축은 30년 전 이 집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입니다. 12명의 부녀자를 살해하고 시신을 처리한 남성의 이야기가 저주 편지 형식으로 끼어들며, 현재의 공포에 역사적 무게를 더합니다. 단순한 귀신 소동이 아니라, 인간의 원한과 땅에 깃든 사악한 존재가 결합한 구조입니다. 이 점이 전작들과 일관된 세계관을 형성합니다(출처: 교보문고 도서 상세페이지).
- 사이코메트리: 접촉을 통해 공간·사물에 남은 기억을 읽는 초감각 능력. 민시현의 핵심 설정.
- 도깨비: 한국 무속 신앙의 존재를 인두겁 쓰는 포악한 이물로 재해석.
- 아공간: 현실에 겹쳐 있는 틈새 차원. 옥도령 실종의 원인.
- 저주 편지: 독자를 향해 직접 말을 거는 형식으로, 몰입감을 극단까지 끌어올리는 장치.
읽고 나서 든 생각들, 솔직하게
저는 어둠 3부작을 처음(어두운 물)부터 읽었습니다. 전작 없이도 읽는 데 큰 어려움은 없겠지만, 민시현의 사이코메트리 능력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윤동욱이 모시는 애기신녀가 어떤 존재인지는 배경 지식이 없으면 조금 붕 뜨는 느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수영네 가족 이야기가 제게는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집이 이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부동산 앱만 열어보고 또 닫고, 결국 그 집을 떠나지 못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정말 공감이 됩니다. 집이라는 건 단순히 공간이 아니라 계약서와 보증금과 이사 비용과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실이니까요. 귀신이 나온다고 해서 바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저도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결말에서 수영 가족이 피비린내 나는 참극을 맞이하는 게 아니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귀결되었을 때, 저는 크게 안도했습니다. 이게 단순한 해피엔딩이 아니라, 그동안 쌓인 긴장감을 한꺼번에 풀어주는 설계처럼 느껴졌습니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성선설을 믿는다고 밝혔습니다. 저는 사실 성악설 쪽에 가까운 사람인데, 그래서인지 도깨비가 되려는 인간 캐릭터가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태생적으로 악한 게 아니라 스스로 악을 선택해 이물이 되려 한다는 설정은,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이 시리즈의 주제를 가장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결과라고 봅니다. 제가 직접 읽으면서 가장 소름 돋았던 대목도 귀신 장면이 아니라 그 인간 캐릭터의 동기가 드러나는 부분이었습니다.
민시현, 윤동욱, 옥도령 세 사람의 조합이 3부작 내내 로맨스 없이 순수한 우정으로만 유지된다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전건우 작가는 18년간 호러 소설을 써온 작가로(출처: YES24 작가 소개), 이 시리즈에서 서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 남녀 주인공의 관계가 오히려 서사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걸 증명했습니다. 저도 이 세 사람의 조합이 3부작으로 끝나는 게 아쉽고, 더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어두운 집, 전작 안 읽어도 이해할 수 있나요?
A. 『어두운 집』만 읽어도 이야기 자체를 따라가는 데 무리는 없습니다. 다만 민시현의 사이코메트리 능력이나, 윤동욱이 계속 떠올리는 애기신녀와의 관계 등은 전작을 읽으면 훨씬 입체적으로 와닿습니다.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전작부터 순서대로 읽을 것을 권합니다.
Q. 도깨비가 무섭게 나온다던데, 어느 정도인가요?
A. 우리가 흔히 아는 귀엽고 장난스러운 도깨비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 소설의 도깨비는 인간의 기운을 먹어치우고 인두겁, 즉 사람의 껍데기를 뒤집어쓰는 이물로 묘사됩니다. 밤에 혼자 읽으면 잠 못 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Q. 결말은 해피엔딩인가요, 배드엔딩인가요?
A. 스포일러 없이 말씀드리면, 선(善)이 이기는 결말입니다.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 직접 밝혔듯, 어둠 3부작 전체의 핵심은 결국 선한 인물들이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극도로 쌓인 공포와 긴장감이 풀리는 순간의 안도감은 꽤 큽니다.
Q. 공포 소설 처음 읽는 사람도 괜찮을까요?
A. 자극적인 묘사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연쇄살인의 디테일이나 원한 가득한 귀신 묘사처럼 강렬한 이미지들이 나옵니다. 그래도 단순 공포가 아니라 인물 서사와 한국 무속 신앙이 탄탄하게 깔려 있어, 공포 소설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몰입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결론
『어두운 집』을 덮고 나서 제가 먼저 한 건 전작 두 권을 검색한 것이었습니다. 그게 이 책에 대한 제 최종 평가입니다. 시리즈의 마지막 편을 읽고 나서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작품, 그게 쉬운 일이 아닌데 전건우 작가는 해냈습니다.
도깨비터와 아공간이라는 오컬트 개념, 연쇄살인의 역사, 그리고 현실적인 가족의 이야기가 하나의 집 안에서 교차하는 구조는 한국 공포소설이 얼마나 넓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공포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분이라도,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불안감에 공감하는 분이라면 한번 도전해볼 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