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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키상(일본 순수문학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수상한 추리소설이 미스터리보다 로맨스에 더 가깝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은 살인사건을 다루면서도, 책을 덮은 뒤 오래도록 남는 건 트릭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었습니다.



완전범죄, 수학 천재가 설계한 알리바이의 구조

이 소설의 핵심은 알리바이 트릭입니다. 여기서 알리바이 트릭이란 범행 시간대에 용의자가 다른 장소에 있었음을 증명하는 장치를 말하는데, 이 소설은 그 개념 자체를 비틀어버립니다. 쉽게 말해, 경찰이 풀어야 할 문제를 처음부터 잘못 설정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고등학교 수학교사 이시가미는 대학 시절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는 평을 들었던 인물입니다. 그가 설계한 알리바이는 단순히 모녀의 행동을 맞추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그가 살인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노숙자 한 명을 살해하고 신원을 특정할 수 없도록 얼굴을 훼손한 뒤, 그 시체를 토가시의 것인 양 경찰이 오인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소설 제목의 'X'가 가진 의미입니다. 수학에서 X란 아직 값을 모르는 미지수, 즉 문제를 푸는 사람이 구해야 할 대상입니다. 경찰은 처음부터 잘못된 방정식을 풀고 있었던 셈이고, 이시가미는 그 방정식 자체를 설계한 사람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방식으로 독자까지 함께 속이는 미스터리 구성은 흔하지 않습니다.

  • 알리바이 조작: 모녀의 행동 동선을 치밀하게 설계해 경찰 수사를 원천 차단
  • 시체 교체: 노숙자를 살해해 토가시의 사체인 것처럼 위장, 수사 방향을 처음부터 틀어버림
  • 미지수 X의 역할: 독자와 경찰 모두 잘못된 문제를 풀도록 유도한 구조적 반전
요약: 이시가미의 완전범죄는 알리바이 조작을 넘어, 수사 문제 자체를 틀리게 설정하는 수학적 발상에서 출발했습니다.

천재대결, 물리학자 유가와와의 두뇌 싸움

이 소설의 또 다른 축은 탐정 갈릴레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입니다. 탐정 갈릴레오란 데이토 대학의 물리학 교수 유가와 마나부를 가리키는 별칭으로, 형사 구사나기가 막힌 사건마다 찾아가는 비공식 자문역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갈릴레오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출처: 교보문고 도서 정보).

제가 이 대결 구도에서 흥미로웠던 건 단순한 두뇌 싸움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유가와는 수사를 진행하던 중 야스코의 이웃인 이시가미가 대학 시절 자신이 서로의 천재성을 인정했던 동창생임을 기억해냅니다. 그 순간부터 사건은 수사가 아니라 친구에 대한 이해로 바뀝니다. 유가와는 이시가미가 왜 이 일을 벌였는지 직감적으로 파악하면서 깊은 연민에 빠집니다.

소설에서 두 인물은 같은 대학 출신이지만 전공이 달랐습니다. 수학과 물리학, 언뜻 가까워 보이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봅니다. 이 차이가 두 사람의 문제 풀이 방식에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유가와가 트릭을 끝내 간파하는 장면에서 제가 느낀 건 통쾌함보다는 씁쓸함이었습니다. 친구의 비밀을 알게 된 사람이 그걸 세상에 밝혀야 한다는 상황, 그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요약: 유가와와 이시가미의 대결은 수사와 범죄의 싸움이기 이전에, 서로의 천재성을 알아보던 두 친구의 비극적인 충돌입니다.

슬픈사랑, 헌신인가 집착인가

저는 가끔 연인에게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나를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어?" 제 답은 항상 같습니다. "사랑하지만 살인을 저지른다면 봐줄 수 없어. 신고할 거야." 이 소설의 이시가미는 저와 정확히 반대로 행동합니다.

지순한 사랑이란 불순물 없이 오직 상대를 향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이시가미의 감정은 그 정의에 가장 가까운 형태로 묘사됩니다. 이웃으로 이사 온 야스코의 따스함에 마음을 빼앗긴 그는, 그녀와 어떻게 되고 싶다는 욕망조차 품지 않습니다. 그저 그녀가 행복하게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자수하기 전 그가 야스코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당신이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나의 행위는 모두 허사가 되고 만다"였습니다.

그런데 직접 읽어보고 든 생각은, 과연 이것이 순수한 사랑인가 하는 물음이었습니다. 야스코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녀의 삶 전체를 자신의 의지로 설계해버린 것, 그리고 그 감정의 대상이 정말 야스코인지 아니면 야스코를 사랑하는 자신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지점이 있습니다. 소설은 이를 미화하지도 단죄하지도 않고, 그냥 독자 앞에 내려놓습니다. 그 여백이 오히려 오래 남습니다.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권위는 이 소설이 단순한 장르 소설로 소비되지 않는다는 반증입니다(출처: 일본 문예춘추 나오키상 공식 페이지). 일본 추리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잔혹한 호러나 엽기 요소 대신, 사랑과 헌신이라는 낭만적 주제를 미스터리 구조 안에 정밀하게 녹인 점이 평가를 받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요약: 이시가미의 헌신은 숭고함과 집착의 경계에 있으며, 소설은 그 경계를 판단하지 않고 독자에게 질문으로 남깁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입문작으로 적합한가요?

A. 제 경험상 입문작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갈릴레오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보다 미스터리 구조가 훨씬 탄탄하고, 동시에 감정선도 뚜렷해서 추리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도 끝까지 붙들려 읽게 됩니다. 단, 반전의 충격보다 여운을 즐기는 분께 특히 잘 맞습니다.


Q. 영화판과 소설, 어느 쪽이 더 낫나요?

A. 직접 둘 다 접해본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이시가미의 내면을 제대로 따라가려면 소설 쪽이 훨씬 낫습니다. 영화는 시각적 전달력이 강하지만, 그가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의 심리적 밀도는 소설에서만 온전히 느껴집니다. 2008년 일본판은 후쿠야마 마사하루 주연으로, 2012년 한국판은 류승범·이요원 주연으로 제작되었습니다.


Q. 소설 속 트릭이 현재 시점에서도 통하나요?

A. 출간된 지 약 20년이 된 소설이고, 한국은 현재 지문등록제를 시행하고 있어 시체 신원 착각 트릭이 지금 기준으로는 성립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점은 너그럽게 당대의 배경으로 받아들이면 충분히 몰입할 수 있습니다. 트릭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문제 설정 자체를 바꾸는 발상에 있어서, 시대적 한계와 별개로 여전히 유효합니다.


Q. 야스코는 이시가미의 마음을 알고 있었나요?

A. 소설 후반부까지 야스코는 이시가미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유가와가 구사나기 형사에게 진실을 밝히면서 결국 모든 것이 드러나는데, 그 장면에서 야스코가 자백을 선택한다는 사실이 이 소설에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부분이었습니다. 이시가미가 계획한 완전범죄의 마지막 변수는 아이러니하게도 야스코 본인이었습니다.


결론

미스터리 소설로서 반전의 완성도는 높습니다. 트릭을 비트는 발상은 기발하고, 심리 묘사는 섬세합니다. 호러 미스터리가 아닌 미스터리 로맨스로 분류하는 게 더 정확한 소설이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름을 처음 접하는 분께 가장 먼저 권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다만 제가 읽으면서 내내 놓지 못한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이시가미는 정말 야스코를 사랑한 걸까, 아니면 누군가를 그토록 사랑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한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소설이 명확히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여백이 이 소설을 20년이 지난 지금도 읽힐 만하게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461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