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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어도 주변 시세보다 싸다면 살겠냐는 질문에, 저는 주저 없이 "부동산이 더 무섭지. 당연히 살아야지."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전건우 작가의 신작 《죽은 집에 관한 기록》을 읽고 나서는 그 대답을 한 번 더 곱씹게 됐습니다. 이 소설이 다루는 공포는 단순히 귀신이 나오는 집이 아니라, 빌라 전체를 집어삼키는 무차별적 저주이기 때문입니다.
하우스 호러가 가장 무서운 이유
이 소설은 이메일, CCTV 녹화본, 통화 녹취, 인터뷰 같은 기록 형식으로 구성됩니다. 여기서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기법이라는 말을 씁니다. 파운드 푸티지란 실제로 발견된 영상이나 문서처럼 꾸며 현실감을 극대화하는 서사 장치인데, 이 소설은 영상 매체가 아닌 텍스트에서 그 효과를 구현해냅니다. 제가 읽으면서 가장 소름이 돋았던 건 목차 자체였습니다. '0711_1.mov', '현관 앞_0727_16시 20분경'처럼 파일명 형식으로 나열된 챕터 제목들이 마치 실제 사건 파일을 열어보는 느낌을 줬거든요.
주인공 김도형이 이사한 로즈 힐 빌라에서는 처음엔 그냥 넘길 법한 이상 현상들이 등장합니다. 텅 빈 엘리베이터에서 울리는 정원 초과 경고음, 복도에 놓인 낡은 빨간 칫솔. 저는 이 초반부를 읽으며 "이 정도야 일반적인 괴담 수준 아닌가"라고 생각했는데, 전건우 작가는 독자가 그렇게 방심한 사이에 공포의 밀도를 천천히 끌어올립니다.
무속 신앙 용어로 설명하면, 이 빌라는 '음지(陰地)'에 세워진 집입니다. 음지란 음기가 양기를 압도하는 땅으로, 영가(靈駕)—즉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남은 혼령—가 필연적으로 모여드는 장소를 뜻합니다. 소설 속 무속인은 이런 곳에 집을 지으면 처음부터 흉가가 될 운명이라고 단언합니다. 낡아서 흉가가 되는 게 아니라, 원래 흉가였기 때문에 아무도 살지 못하고 방치되는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이 설명을 읽고 제 경험상 이건 꽤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실제로 오래된 동네를 걷다 보면, 유독 빠르게 세입자가 교체되거나 항상 빈 집으로 남아있는 건물이 있으니까요.
소설이 공들이는 또 다른 개념은 '방사형 저주'입니다. 원한을 품고 죽은 영가는 자신을 해친 특정인만 저주하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을 향해 저주를 퍼뜨린다는 설정입니다. 이 개념이 소름 돋는 이유는, 로즈 힐 빌라에 아무런 연고 없이 이사 온 사람들도 예외 없이 저주의 범위 안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전건우 작가가 오랜 시간 취재한 무속 오컬트 지식이 이 부분에서 가장 촘촘하게 드러납니다.
- 파운드 푸티지 형식: 파일명 형태의 목차로 실제 사건 기록처럼 연출
- 음지(陰地) 설정: 음기가 지배하는 땅에 세워진 빌라, 처음부터 흉가
- 방사형 저주: 가해자가 아닌 생명 있는 모든 것으로 무차별 확산
- 영가(靈駕):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남아 저주를 퍼뜨리는 혼령
저주보다 더 마음을 무겁게 한 것
저는 이 소설을 단순한 공포물로 읽기 시작했는데, 로즈 힐 빌라의 과거가 밝혀지는 순간 마음이 꽤 무거워졌습니다. 이 빌라는 원래 다단계 회사의 사무 공간이었고, 욕심과 착취 아래 많은 청년들이 희생된 장소였습니다. 영가가 만들어진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던 것입니다.
저주가 무차별적으로 퍼진다는 설정에 대해, 어떤 분들은 "억울한 피해자들이 왜 다시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냐"는 시각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느꼈습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원한이라는 감정이 논리적으로 대상을 선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현실적인 공포처럼 느껴졌습니다. 실제 사건 사고도 무고한 사람이 엉뚱하게 휘말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 소설에서 제가 가장 섬찟하게 읽은 장면은 죽은 개를 살아있다고 믿으며 안고 있는 주민의 모습이었습니다. 저주에 동화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순간, 저는 독자로서도 잠깐 혼란을 느꼈습니다.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지 모르는 상태—그게 이 소설이 만들어내는 가장 교묘한 공포입니다.
조사팀과 함께 빌라에 들어온 박해수가 사실 화재로 죽은 원귀였다는 반전이 터지는 순간 앞 챕터들을 다시 되짚게 됩니다. '분명히 A였다. 하지만 왜 저렇게 웃고 있을까'라는 짧은 문장이 복선이었음을 뒤늦게 알아채는 경험은 꽤 강렬했습니다.
한국 공포소설 시장에서 전건우 작가의 위치는 독보적입니다. 2008년 단편 〈선잠〉으로 데뷔한 이후 고시원, 아파트 등 생활 공간을 무대로 한 호러를 꾸준히 발표해왔으며, 이번 작품은 '한끼' 경장편 시리즈로 출간됐습니다. 경장편이란 장편소설보다 짧지만 단편보다는 긴 분량으로, 빠르게 읽히면서도 밀도 있는 서사를 담을 수 있는 형식입니다. 실제로 이 책은 부담 없이 한두 시간 안에 읽을 수 있지만, 읽고 난 뒤 여운은 며칠을 갑니다. 서울에도 수많은 빌라가 있는데, 제 경험상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무심코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정원 초과 경고음이 울리지 않는지 한 번쯤 더 신경 쓰게 될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의 공포 구조는 공포문학 연구자들이 자주 언급하는 '언캐니(uncanny)'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언캐니란 원래 익숙하고 안전해야 할 것이 낯설고 위협적인 것으로 변할 때 느끼는 불안감을 뜻하는데,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1919년 논문에서 체계화한 개념입니다(출처: Freud Museum London). '집'만큼 언캐니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공간도 없습니다. 한국 공포소설의 흐름을 살펴봐도, 최근 들어 이처럼 일상 공간을 배경으로 삼는 작품들이 독자들에게 더 강한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출처: 교보문고 《죽은 집에 관한 기록》 상세 페이지).
자주 묻는 질문
Q. 《죽은 집에 관한 기록》 무섭긴 한데 너무 잔인하지 않나요?
A. 잔인한 묘사가 주는 공포보다는 분위기와 상황이 스며드는 방식의 공포에 가깝습니다. 직접적으로 피가 튀는 장면보다는 "왜 저렇게 웃고 있을까"처럼 뭔가 어긋난 느낌이 쌓이면서 불안감이 커지는 구조입니다. 고어 공포물을 기대하는 분들과, 심리적 공포를 선호하는 분들 사이에서 반응이 갈릴 수 있는 소설이라고 봅니다.
Q. 분량이 짧아서 내용이 너무 빈약하진 않나요?
A. 경장편이라는 형식을 걱정하는 시각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읽기 전에는 비슷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짧은 분량 안에 복선, 반전, 세계관 설명이 상당히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어서 허술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빠른 호흡이 긴장감 유지에 도움이 됐습니다.
Q. 오컬트나 무속 지식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나요?
A. 충분히 가능합니다. 음지, 영가, 방사형 저주 같은 개념들이 등장하지만, 소설 안에서 무속인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풀어서 설명해줍니다. 오컬트에 익숙한 분들은 디테일이 더 풍부하게 느껴질 수 있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맥락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 같습니다.
Q. 결말이 열린 결말인가요, 닫힌 결말인가요?
A. 저주의 완전한 해소가 이루어지지 않는 방향으로 끝납니다.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결말을 선호하는 분들에게는 아쉬울 수 있다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불완전한 결말이 오히려 현실적인 공포를 더 오래 남긴다고 느꼈습니다.
결론
《죽은 집에 관한 기록》은 귀신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꾸민 소설이 아닙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인 '집'이 어떻게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이 되는지를 파운드 푸티지 형식으로 차갑게 보여줍니다. 음지, 영가, 방사형 저주라는 무속 개념들이 서사를 단단하게 받쳐주고, 거기에 다단계 피해자들의 비극적 과거까지 얹히면서 공포 이상의 감정이 남습니다.
하우스 호러 장르를 좋아하는 분들께도, 한국 오컬트 소설이 처음인 분들께도 입문작으로 부담 없이 권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다 읽고 나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자기가 사는 엘리베이터를 한 번쯤 다르게 보게 된다면, 이 소설이 제 역할을 다 한 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