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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살인마가 주인공인데 오히려 응원하게 된다면, 그게 가능한 이야기일까요. 저는 다이어트 치팅데이를 떠올리다 이 소설을 펼쳤고, 첫 장을 덮을 때쯤엔 그 단어가 완전히 다른 무게로 느껴졌습니다. 이현진 작가의 『치팅 데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걸 건드리는 소설이었습니다.
다크히어로 코드, 한국 소설에서도 통할까
일반적으로 한국 소설의 주인공은 도덕적으로 선한 쪽에 가까워야 독자의 공감을 얻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믿어 왔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서는 그 전제가 꽤 흔들렸습니다.
주인공 정희태는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한 달에 한 번 자신이 정한 기준의 악인을 직접 처단합니다. 이것이 그의 치팅데이입니다. 여기서 치팅데이란 원래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식단 규칙을 잠시 풀고 먹고 싶은 것을 먹는 날을 뜻합니다. 저도 다이어트를 독하게 할 때, 삶은 달걀과 샐러드만 버티다가 2주에 한 번 떡볶이와 라면을 먹는 그 날 하나로 식단을 이어갔으니, 그 개념이 얼마나 절박한 안전장치인지는 몸으로 압니다. 그런데 작가는 이 단어를 살인의 언어로 치환했습니다. 솔직히 그 발상 하나만으로 이미 감탄이 나왔습니다.
다크히어로란 선한 목적을 위해 폭력이나 반사회적 방법을 사용하는 인물 유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악당을 없애는 또 다른 악당인데, 독자는 그 과정에서 묘한 통쾌감을 느낍니다. 출판사 측에서도 미국 드라마 〈덱스터〉를 직접 언급했을 만큼, 이 작품은 그 계보를 의식하고 있습니다. 〈덱스터〉는 법의학자이자 연쇄살인마라는 설정으로 전 세계 팬덤을 만들어 낸 작품입니다(출처: IMDb, Dexter). 희태는 그 구조를 한국적 정서 안에서 재현해 냅니다.
소설 속 문장 하나가 계속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선하고 정의로워야만 영웅이 되는 건 아니었다. 악당을 처단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저는 동의와 불안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논리적으로는 맞는 것 같은데, 그 선을 누가 긋느냐가 문제니까요.
희태의 반사회적 성향은 어린 시절부터 존재했습니다. 반사회적 성향이란 타인의 감정이나 권리에 공감하지 못하고, 사회적 규범을 내면화하지 않는 특성을 가리킵니다. 그럼에도 희태가 평범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어머니의 꾸준한 교육과 그로 인해 형성된 최소한의 규칙 덕분이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양육 환경이 본성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해도, 그것을 억제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 치팅데이 = 다이어트 규칙을 잠시 허무는 날 → 소설에서는 살인을 허용하는 날로 재해석
- 다크히어로 = 악을 제거하기 위해 스스로 도덕 경계를 넘는 인물 유형
- 반사회적 성향을 억제하는 구조로 기능하는 것이 희태의 '규칙'과 '어머니의 교육'
사이코패스 두 명이 맞붙으면 생기는 일
이 소설이 단순한 다크히어로물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지점은, 희태 앞에 또 다른 살인자가 등장하면서부터입니다. 경찰관 동규입니다. 이 인물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소설의 긴장감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사이코패스란 공감 능력의 결핍과 함께 충동 조절 장애, 타인 조종 성향을 보이는 성격 장애 유형으로, 정신의학적으로는 반사회성 인격장애의 한 스펙트럼으로 분류됩니다. 여기서 반사회성 인격장애란 규범과 타인의 권리를 지속적으로 무시하는 행동 패턴이 성인기 이전부터 나타나는 장애를 의미합니다(출처: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희태와 동규는 같은 스펙트럼 위에 있지만,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은 전혀 다릅니다.
희태는 어머니의 존재로 인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스스로 설계했습니다. 반면 동규는 폭력과 방치 속에서 자랐고, 스스로 갱생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마저 보육원을 불태우며 발로 걷어찼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단순한 선악 구도가 아닙니다. 같은 본성을 가진 두 사람이 어떤 환경에 놓였느냐에 따라 얼마나 다른 방향으로 가는지를 보여주는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동규가 희태 학생의 아버지라는 설정은 세상 참 좁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우연치고는 너무 촘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동규의 아내 수진이 남편의 살인을 방관했다는 설정도 조금 뜬금없었는데, 알면서 모른 척하는 심리가 좀 더 깊이 있게 그려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대결 구도에서 저는 한 가지 질문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동규의 딸 민서는 어떻게 될까. 살인자의 딸로 손가락질 받으며 할머니 밑에서 자라게 된 아이. 희태처럼 최소한의 규칙을 만들 수 있을지, 아니면 동규처럼 그 기회마저 걷어찰지. 소설은 이 질문을 독자에게 열어둔 채로 끝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치팅 데이』는 잔인한 장면이 많은 편인가요?
A. 일반적으로 살인마가 주인공인 소설은 극단적인 묘사가 많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가 읽어보니 자극적인 장면보다는 심리 묘사와 두 인물의 대결 구도에 집중하는 편이었습니다. 고어 장면보다는 내면의 긴장감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Q. 덱스터를 좋아했다면 이 소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요?
A. 다크히어로 코드와 자체적인 도덕 기준을 가진 살인마라는 설정은 분명히 비슷합니다. 다만 한국적 배경과 두 사이코패스의 대결이라는 구도는 덱스터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므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을 느끼게 됩니다. 제 경험상 덱스터를 좋아했다면 초반부터 흡입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Q. 주인공 희태를 끝까지 응원하게 되나요, 아니면 불편해지나요?
A. 저는 둘 다였습니다. 법이 처단하지 못하는 악인을 제거한다는 논리는 읽는 내내 통쾌함을 주지만, 마지막에 희태가 다시 치팅데이를 시작하는 장면에서는 그 선이 앞으로도 지켜질지 확신이 없어졌습니다. 통쾌함과 불안이 공존하는 독서 경험이었습니다.
Q. 이현진 작가의 첫 작품인데 완성도가 어느 정도인가요?
A. 데뷔작치고는 구성이 탄탄한 편입니다. 다만 일부 등장인물의 연결 고리가 너무 우연에 기댄 부분이 있고, 조연의 심리 묘사가 조금 더 두꺼웠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전반적으로는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결론
정리하면, 『치팅 데이』는 치팅데이라는 단어 하나를 완전히 다른 맥락으로 뒤집어 놓은 소설입니다. 저는 다이어트 식단을 버티게 해준 그 방파제 개념이 살인의 언어가 되는 순간, 묘하게 그 단어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반사회성 인격장애라는 심리학적 개념을 기반으로 두 인물을 대비시킨 구조는 단순한 장르 소설 이상의 무게를 냅니다.
법이 닿지 못하는 악을 처단하는 것이 정당한가, 그 선은 누가 그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소설이 끝난 뒤에도 계속 따라옵니다. 제 경우엔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한참 그 생각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한국 스릴러 소설에서 이런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반가웠습니다. 이현진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