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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탕비실을 쓸 때, 누군가의 행동이 유독 거슬렸던 적 있으십니까? 저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제가 그 '거슬리는 사람'이었을 가능성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미예 작가의 신작 《탕비실》은 바로 그 불편한 가능성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소설입니다.



사무실 빌런은 항상 자기가 빌런인 줄 모릅니다

직장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평판이 존재합니다. 여기서 평판이란 단순히 업무 능력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저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어떤가'에 대해 동료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형성된 인상을 말합니다. 옆자리에서 손톱을 깎거나, 식탐을 부리거나, 사무실 전화가 와도 항상 자리를 비우는 사람들이 빌런으로 지목되곤 하는데, 저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런 사람을 한두 명쯤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탕비실》을 읽으면서 제가 가장 먼저 느낀 건 불편함이었습니다. 주인공 '얼음'은 공용 얼음 틀에 콜라 얼음, 커피 얼음을 얼렸다는 이유로 리얼리티 쇼에 캐스팅됩니다. 본인 입장에서는 동료를 위한 배려였을 텐데,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 설정이 저한테는 꽤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원래 빌런은 스스로가 빌런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 편으로, 친절과 배려가 빌런의 근거가 된다는 발상 자체가 낯설게도 느껴졌습니다.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 소설이라는 점도 이 불편함을 증폭시킵니다. 하이퍼리얼리즘이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때로는 그 이상으로 세밀하게 묘사하는 기법을 말합니다. 판타지였던 전작 《달러구트 꿈 백화점》과 달리 이번 작품은 어딘가 실제로 있을 법한 사무실과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래서 읽는 내내 '혹시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 아닌가'라는 찜찜함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 공용 얼음 틀에 커피·콜라 얼음을 얼리는 사람
  • 인기 커피믹스만 몽땅 챙겨가는 사람
  • 전자레인지 코드를 뽑고 휴대폰을 충전하는 사람
  • 싱크대에 안 씻은 텀블러를 줄 세워두는 자칭 환경 운동가
  • 냉장고에 케이크 박스를 가득 채워두는 사람

위 인물들 중 본인이 해당된다고 느끼는 항목이 있으십니까?

요약: 사무실 빌런은 본인이 빌런인지 모르고, 《탕비실》은 그 불편한 진실을 하이퍼리얼리즘으로 정면에서 다룹니다.

직장 평판이 만들어지는 방식이 이렇게 무서울 줄은 몰랐습니다

소설의 배경인 리얼리티 쇼 '탕비실'은 일종의 마피아 게임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출연자 여덟 명 중 한 명은 방송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캐릭터인 '술래'이고, 나머지는 서로를 교란하면서 술래를 찾아내야 합니다. 정답자가 적을수록 상금이 커지는 구조입니다. 정말 이런 리얼리티쇼가 있다면 시청할 것 같습니다.

제가 이 구조에서 흥미롭다고 느낀 건 게임 설정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직장 내 행동 패턴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소설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실제 회사에서도 탕비실은 사람의 민낯이 드러나는 공간입니다. 커피를 타면서 무심코 하는 행동, 냉장고를 열고 닫는 습관, 그런 작은 것들이 쌓여서 한 사람의 직장 평판을 만들어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귀인 오류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귀인 오류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볼 때 상황적 요인보다 그 사람의 성격이나 의도 탓으로 돌리는 인지적 편향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누군가 얼음 틀에 커피를 얼리면 '배려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 '왜 저러는 거지?'로 먼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소설이 불쾌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지점입니다(출처: NIH — 귀인 이론 관련 연구).

주인공이 "고작 그런 이유로 이런 방송에 날 추천하면서 재밌었을까? 내가 알게 되었을 때 나와 껄끄러워질 걸 전혀 염두에 두지도 않았던 걸까?"라고 되묻는 장면은 제가 이 소설에서 가장 오래 붙들고 있었던 부분입니다. 이 부분을 에피소드로 더 풀어줬으면 좋겠다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만, 한편으론 상상의 여지로 남겨두었기 때문에 여운이 더 길게 이어지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요약: 탕비실이라는 공간은 귀인 오류가 작동하는 축소판이고, 소설은 그 심리 구조를 마피아 게임 형식으로 날카롭게 포착합니다.

친절이 소름이 되는 순간, 이 소설은 공포가 됩니다

제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지점은 게임의 반전이 아니었습니다. 출연자가 본인의 행동이 동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스스로는 친절과 배려라고 생각했던 행동들이 동료들에게는 불쾌하고 소름 돋는 경험으로 전달되었다는 사실, 그게 이 소설의 진짜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엔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한 가지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만약 제가 출근해서 냉장고를 열었는데, 누군가 공용 얼음 틀에 제가 좋아하는 콜라로 얼음을 얼려놨다면 어떨까요. 처음엔 '어, 고맙네'가 아니라 '이게 뭐지, 왜 나를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거지'라는 감각이 먼저 올 것 같습니다. 친절의 밀도가 지나쳤을 때, 그건 배려가 아니라 침범이 됩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심리적 경계의 문제로 봅니다. 심리적 경계란 개인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적절한 거리감과 자율성의 범위를 말합니다. 공용 공간에서 누군가가 나의 취향을 무단으로 반영하는 행동은, 선의라 하더라도 이 경계를 넘는 행위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출처: APA — 심리적 경계 관련 자료).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등장하는 인물 중 그 누구도 타인에게 완전히 이해받은 적 없고, 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고 직접 씁니다. 저는 이 문장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라고 읽었습니다. 회사는 하루 8~9시간을 타인과 함께 있는 공간입니다. 그렇다고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거나 이해받으려 애쓸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공동의 규칙과 심리적 경계만큼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선이 무너질 때 친절은 공포가 됩니다.

요약: 과도한 친절은 심리적 경계를 침범하고, 《탕비실》은 그 불편한 감각을 소름 돋도록 정확하게 포착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탕비실》은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랑 분위기가 많이 다른가요?

A. 많이 다릅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따뜻한 힐링 판타지라면, 《탕비실》은 하이퍼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한 심리 소설에 가깝습니다. 첫 문장부터 "누가 가장 싫습니까?"로 시작할 정도로 날카롭고, 읽는 내내 재미와 불쾌감 사이를 오가게 됩니다. 전작을 좋아했다면 다른 작가를 만난 것처럼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Q. 직장을 다니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을까요?

A. 직장 경험이 있으면 공감 포인트가 훨씬 많은 건 사실입니다. 다만 소설의 핵심 주제인 '타인에게 나의 행동이 어떻게 보이는가', '친절과 침범의 경계는 어디인가'는 직장 경험과 무관하게 인간관계를 가진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학교 생활이나 공동생활 경험이 있다면 충분히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마피아 게임 요소가 강한 편인가요, 심리 묘사가 강한 편인가요?

A. 게임 구조는 뼈대로만 작동하고, 실제 무게감은 심리 묘사에 있습니다. 누가 술래인지 찾아가는 재미도 있지만, 그보다 각 출연자가 자신에 대한 타인의 시선을 처음으로 마주하는 장면들이 훨씬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스릴보다는 서늘함에 가까운 소설이라고 느꼈습니다.


결론

《탕비실》은 가볍게 읽기 좋은 소설이지만, 읽고 나서 가벼운 기분이 들지는 않습니다. 사무실을 배경으로 한 현실 공포라는 표현이 딱 맞습니다. 리얼리티 쇼라는 낯선 설정 안에서 귀인 오류와 심리적 경계, 직장 평판이 만들어지는 방식까지 꽤 밀도 있게 담겨 있습니다.

이미예 작가의 전작을 읽고 따뜻한 작가라는 인상을 가지고 계셨다면, 이번 소설은 그 인상을 한번 뒤집어볼 기회가 될 것입니다. 150쪽 남짓이니 퇴근 후 하루 이틀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습니다. 다 읽고 나면, 내일 출근길에 탕비실을 지나칠 때 아마 예전과는 다른 눈으로 보게 되실 겁니다. 그게 이 소설이 노리는 지점인 것 같습니다.

참고: 교보문고 — 《탕비실》 이미예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