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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포 소설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은 적이 있으신가요? 조예은의 두 번째 단편집은 괴물과 몽마, 살인마가 등장하는데도 이상하게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처음엔 그 이유를 몰랐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이건 공포를 소재로 쓴 위로의 소설이라는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장르소설이 할 수 있는 것들, 팩트로 따져보면

《트로피컬 나이트》는 조예은이 2023년 출간한 두 번째 소설집입니다. 제2회 황금가지 타임리프 소설 공모전 우수상, 제4회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 대상을 거쳐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칵테일, 러브, 좀비》 《스노볼 드라이브》를 발표하며 독자층을 쌓아온 작가의 작품입니다. 단편 여덟 편을 묶었고, 장르로는 호러·스릴러와 판타지의 교차점 어딘가에 위치합니다.

여기서 "장르소설"이란 공포, 판타지, SF처럼 특정 장르 문법을 따르는 소설을 뜻합니다. 한국 출판 시장에서 장르소설은 오랫동안 순문학보다 낮은 평가를 받아온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최근 5년간 흐름이 달라졌습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장르소설 시장 규모는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 중이며, 특히 20~30대 여성 독자층을 중심으로 한국형 호러·판타지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트로피컬 나이트》는 그 흐름 안에서도 꽤 독특한 위치를 점합니다. 이른바 "다크 판타지"—어둡고 공포스러운 세계관에 판타지 요소를 결합한 형식—를 취하면서도 결말이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수록작 〈고기와 석류〉를 보면, 홀로 남은 노인 옥주가 어린아이 얼굴을 한 괴물 '석류'를 집 안으로 들입니다. 보통 이런 설정이면 서사는 희생이나 피해로 흘러가죠. 그런데 옥주는 석류가 자신을 잡아먹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통해 고독사에 대한 공포를 덜어냅니다. 고독사란 아무도 없이 혼자 죽음을 맞는 것을 뜻하는데, 옥주에게는 괴물과의 동거가 역설적으로 그 공포를 해소하는 방식이 됩니다.

저는 이 설정을 읽으면서 작가가 단순히 기발한 아이디어를 쓴 게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노인의 고립과 죽음에 대한 불안을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그걸 공포의 원천으로만 남겨두지 않는 태도가 있었습니다.

  • 수록작 8편 모두 명확한 해피엔딩을 주지 않지만, 각 인물이 살아내거나 나아가는 방향을 향해 있습니다.
  • 괴물·몽마·살인마 등 정체불명의 존재들이 단순한 공포 소재를 넘어 이야기의 주체로 등장합니다.
  • 디스토피아적 세계관(먼지바람, 시공간 싱크홀 등)을 사용하되, 인물들은 사랑과 연대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 한국 문학상 수상 이력과 꾸준한 출판 경력을 가진 작가의 작품으로, 장르소설로서의 완성도가 검증되어 있습니다.
요약: 《트로피컬 나이트》는 다크 판타지 형식을 취하면서도 절망이 아닌 생존과 연대로 수렴하는 한국 장르소설의 실력 있는 사례입니다.

자취방 5평에서 떠올린 〈가장 작은 신〉

제가 직접 읽어보니, 여덟 편 중 〈가장 작은 신〉이 제일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원인 불명의 먼지바람이 도시를 덮치는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수안은 2년째 집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 집에 다단계 회원 모집을 위해 찾아온 고교 동창 미주가 드나들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서로의 흑심과 외로움을 알면서도 어떤 관계를 이어갑니다.

저도 자취할 때 비슷한 감각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주말 내내 방 안에만 있다 보면 이상한 논리가 생깁니다. '밖은 다 망했고, 5평짜리 이 방만 안전한 게 아닐까.' 저축한 돈을 꺼내서 얼마나 버티는지 계산해본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숨만 쉬어도 돈이 빠져나가는 현실 앞에서 그 계산은 금방 무너졌지만요. 수안의 상황이 SF 설정 안에 있어도, 그 심리적 리얼리티는 낯설지 않았습니다.

〈가장 작은 신〉이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두 가지 구조 때문입니다. 첫째로, 수안과 미주는 각자 가장 두려워하던 것을 이겨냄으로써 상대방에게 도달합니다. 수안은 2년 만에 문 밖으로 나가고, 미주는 등쳐먹으려던 수안에게 "미안해"라는 문자를 남깁니다. 이걸 서사론 용어로 설명하면 "캐릭터 아크"가 명확하게 그려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캐릭터 아크란 인물이 이야기 안에서 내면적으로 변화하는 궤적을 말하는데, 이 소설은 그 궤적이 서로를 향해 수렴한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둘째로, '먼지의 신'이라는 오컬트 존재가 실제로 등장했다가 허무하게 무너지는 장면이 꽤 통쾌했습니다. 오컬트란 초자연적이고 신비로운 힘이나 존재를 다루는 개념으로, 보통 이런 존재는 서사에서 강력한 위협으로 기능합니다. 그런데 먼지의 신은 등장한 뒤 먼지답게 흩어집니다. 위협을 극적으로 과장하지 않고 현실적인 무게감으로 착지시키는 방식이 조예은 특유의 스타일처럼 보였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결말 처리는 독자 입장에서 어이없으면서도 납득이 되는, 독특한 여운을 남깁니다.

나머지 단편들도 비슷한 구조로 작동합니다. 〈나쁜 꿈과 함께〉에서 몽—사람에게 악몽을 심어주는 존재—는 은성에게서 곰 인형이 되어버립니다. 몽마로서 제 역할을 잃어가면서도 오히려 은성 곁에 있고 싶어 하는 존재가 됩니다. 〈유니버설 캣숍의 비밀〉에서는 사라진 고양이들이 고양이 별로 돌아갔다는 기발한 설정으로, 인간과 반려동물 사이의 애착을 다룹니다. 소설이 끝난 뒤에도 "그래서 석류는 결국 옥주를 먹었을까?", "릴리와 연주는 다시 만날까?" 같은 질문들이 계속 떠오르는 건, 이야기가 독자 머릿속에서 끝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출판사 쪽에서도 "젤리소다 맛"이라고 표현했는데, 제가 읽어보니 그 말이 꽤 정확했습니다. 가볍게 톡 쏘는데 잔향이 생각보다 오래갑니다(출처: 교보문고 도서 소개).

요약: 〈가장 작은 신〉을 비롯한 수록작들은 인물의 캐릭터 아크가 선명하고, 서사가 끝난 뒤에도 질문이 남는 방식으로 독자에게 계속 말을 겁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무서운 소설인가요? 호러를 잘 못 읽는데 읽어도 될까요?

A. 제가 읽어본 바로는 극단적인 공포 묘사는 거의 없습니다. 괴물이나 몽마 같은 존재가 등장하지만, 서사의 초점은 공포 자체보다 인물의 심리와 관계에 맞춰져 있습니다. 호러보다는 기묘한 동화에 가까운 분위기여서 장르에 익숙하지 않아도 큰 부담 없이 읽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Q. 단편집이라 연결성이 없는 건가요?

A. 각 단편은 독립된 이야기지만, 작가가 구축하는 세계관의 분위기와 인물을 다루는 방식은 일관성이 있습니다. 먼지바람이 부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이나, 인간 곁에서 연민을 느끼는 초자연적 존재라는 설정이 여러 편에 걸쳐 반복되며 "조예은 월드"를 형성합니다. 순서 없이 읽어도 되지만, 순서대로 읽으면 그 세계관이 점점 확장되는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Q. 결말이 열려있는 편인가요, 닫혀있는 편인가요?

A. 대부분의 수록작이 열린 결말을 채택합니다. 명쾌한 해소 없이 인물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장면에서 마무리됩니다. 저는 읽고 나서도 계속 "그 다음은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하게 됐는데, 이게 장점이 될 수도, 아쉬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완결된 이야기를 선호한다면 미리 감안하고 읽는 편이 좋습니다.


Q. 조예은 작가의 다른 책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A. 전작 《칵테일, 러브, 좀비》가 선혈과 폭력 너머의 온기를 담았다면, 《트로피컬 나이트》는 판타지 요소를 더 강화하면서 세계관의 범위를 넓혔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조예은을 처음 접한다면 《트로피컬 나이트》부터 읽어도 충분하지만, 기존 작품을 읽었다면 세계관이 확장되는 과정을 더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결론

《트로피컬 나이트》는 공포 소설로 분류되지만, 제가 읽으면서 받은 인상은 그 레이블과 조금 달랐습니다. 무섭기보다 기묘했고, 어둡기보다 따뜻했습니다. 여덟 편의 이야기는 명확한 결말을 주지 않으면서도 각 인물이 살아내는 방향을 잃지 않습니다. 그 구조가 저에게는 단순한 장르적 쾌감 이상의 여운을 남겼습니다.

특히 〈가장 작은 신〉 속 수안처럼, 방 안에 갇힌 채 세상과의 접촉을 줄여가는 인물의 심리는 생각보다 먼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제 자취방 경험이 겹치면서 더 오래 생각하게 됐습니다. 가벼운 괴담집을 원하는 분께도, 한국 장르소설이 어디까지 왔는지 가늠해보고 싶은 분께도 권할 만한 책입니다.

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1584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