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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귀신 서른한 종류를 한 권에 담은 책이 있습니다. 공격력·방어력·오싹력 수치까지 게임처럼 정리해놨는데, 퇴치 방법 항목에 "안타깝게 없다"고 적힌 귀신이 버젓이 실려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피식 웃으면서도, 어릴 때 화장실 변기에 오래 앉지 못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올라왔습니다.
귀신 도감처럼 펼쳐지는 구성, 직접 읽어보니
『한국귀신이야기사전』은 작가 문화류씨의 세 번째 단편집입니다. 홍콩할매, 홍대 저주 인형, 장산범, 손각시 등 서른한 종류의 귀신을 소개하고, 각 귀신에 얽힌 단편 소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았습니다. 여기서 옴니버스란 독립된 여러 이야기를 하나의 책 안에 묶은 구성 방식을 의미합니다. 각 에피소드가 연결되지 않아 어느 순서로 읽어도 무방하고, 출퇴근길 짬짬이 한 편씩 꺼내 읽기에 딱 좋습니다.
제가 직접 펼쳐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귀신마다 붙어 있는 스탯(stat) 표였습니다. 스탯이란 게임에서 캐릭터의 능력치를 수치로 나타낸 것인데, 이 책에서는 공격력·방어력·오싹력 세 항목으로 귀신의 위협 수준을 한눈에 보여줍니다. 어릴 때 즐겨 읽었던 공포 동화 시리즈의 소설판 같다는 느낌이 딱 들었습니다. 공포물이면서도 어딘가 귀엽고 체계적인 이 기묘한 조합이 책장을 넘기는 속도를 높여줬습니다.
퇴치법 항목도 재미있습니다. "화를 돋우지 않는다. 이미 화가 난 귀신은 잘 달래준다"처럼 현실적인 조언도 있지만, 일부 귀신 앞에는 그냥 "안타깝게 없다"고 적혀 있습니다. 공포물 특유의 진지함 대신 이런 건조한 유머가 튀어나오니 오히려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지역 고증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천안 지역 오래된 폐가, 경남의 한 문화예술회관 뒤 약수터, 양수리세트장 같은 실제 지명이 등장하면서 괴담의 신빙성을 자연스럽게 높여줍니다. 단순한 창작 귀신 이야기가 아니라 구전 설화나 도시전설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는 사실이 읽는 내내 느껴졌습니다. 저자는 『저승에서 돌아온 남자』, 『무조건 모르는 척하세요』 등을 통해 꾸준히 한국 귀신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온 작가인 만큼, 자료 조사의 깊이가 문장 곳곳에서 묻어납니다(출처: 교보문고 전자책).
- 서른한 종류의 귀신을 공격력·방어력·오싹력 수치로 정리한 귀신 도감 형식
- 각 귀신마다 독립된 단편 소설이 붙어 있는 옴니버스 구성
- 천안·경남·양수리 등 실제 지명을 활용해 괴담의 현실감을 강화
- 퇴치법 "안타깝게 없다" 항목처럼 건조한 유머가 공포와 공존
관을 끄는 노파에서 알 수 있는 공포의 의미
제가 읽으면서 가장 오래 멈춰 있었던 귀신은 '관을 끄는 노파'였습니다. 저승사자가 수명이 다한 사람을 명부에 따라 데려가는 존재라면, 이 노파는 사고사(事故死), 즉 사고로 갑작스럽게 죽은 사람들을 담당하는 귀신입니다. 1년에 108명이라는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군대·교도소·병원처럼 사고가 잦은 장소를 주로 배회한다고 합니다. 노파가 관을 다섯 개 끌고 지나가면, 그 수만큼의 사고가 뒤따라 일어납니다.
처음엔 그냥 무서운 이미지였는데, 곰씹을수록 웃음이 나왔습니다. 저승사자는 명부만 들고 다니는데, 이 노파는 관을 직접 끌고 다닌다는 설정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현실적인 디테일이 붙으면 공포보다 상상이 먼저 앞서곤 합니다. 관을 끄는 노파도 부서에서 가장 체력 좋고 매일 운동하는 직원 이미지가 그려졌습니다.
퇴치법도 재밌습니다. 저승사자를 싫어하기 때문에 저승사자인 척하면 피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경쟁 부서 사이에서 서로 얼굴도 보기 싫은 그 관계, 어딘지 낯설지 않지 않습니다. 저승차사를 "저승에서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공무원"이라고 설명하는 대목을 보면, 한국의 사후세계관에는 현실 관료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저승차사란 죽은 이를 저승으로 안내하는 사자를 뜻하며, 한국 민간신앙에서는 단순한 신적 존재가 아닌 직급과 역할이 나뉜 관료적 존재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이렇게 현실적으로 생각하니 귀신이 그렇게까지 공포스러운 존재는 아닌거 같습니다.(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저자는 "귀신이 있다고 믿나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귀신은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살다 보면 생겨나는 두려움이나 괴로움·분노가 귀신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귀신을 본 적은 없고, 앞으로도 굳이 보고 싶진 않습니다만, 존재를 아예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마음먹기에 따라 공포의 무게가 달라진다는 건 경험으로 압니다.
어릴 때 화장실에서 귀신이 머리카락을 세고 있다는 말이 무서워 주기적으로 머리를 흔들곤 했습니다. 하지만 성인 평균 머리카락 개수가 10만개임을 배운 뒤, 더이상 화장실 귀신이 무서워지지 않았습니다. 10만개를 10분안에 세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든 건 제 마음 먹기에 달려있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 책 정말 무섭나요? 겁이 많은 편인데 읽어도 될까요?
A. 제가 읽어본 느낌으로는 그렇게까지 무섭지는 않습니다. 귀신마다 스탯과 퇴치법이 도감 형식으로 정리되어 있어 공포물이라기보다 흥미로운 민속 컬렉션 같은 인상이 강합니다. 오싹한 장면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밤새 잠을 못 자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Q. 관을 끄는 노파 말고 다른 귀신도 개성 있나요?
A. 홍콩할매, 장산범, 손각시처럼 이름만 들어도 낯선 귀신부터 홍대 저주 인형처럼 최근 도시전설로 알려진 귀신까지 서른한 종류가 등장합니다. 전래동화 분위기의 귀신과 현대 괴담이 함께 실려 있어 읽다 보면 한국 귀신의 스펙트럼이 생각보다 넓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Q. 옴니버스 구성이면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되나요?
A. 네, 각 에피소드가 독립되어 있어서 어느 귀신부터 펼쳐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목차에서 이름이 낯선 귀신부터 골라 읽었는데, 그렇게 읽어도 전혀 흐름이 끊기지 않았습니다. 짬 날 때마다 한 편씩 꺼내 읽기 좋은 구성입니다.
Q. 저승차사나 저승 세계관을 다룬 한국 민속 자료를 더 찾고 싶으면 어디서 보면 되나요?
A.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온라인판에서 저승차사, 삼신, 귀신 항목을 검색하면 체계적으로 정리된 민간신앙 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이 흥미로웠다면 해당 사전에서 배경 지식을 보충하며 읽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결론
『한국귀신이야기사전』은 무겁지 않습니다. 귀신 도감이라는 형식 덕분에 공포물 특유의 압박감 없이 에피소드별로 가볍게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관을 끄는 노파처럼 현실 직장인의 고충이 투영된 귀신 설정을 보다 보면, 사후세계관이 결국 우리가 살아온 방식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서운 것들도 충분히 웃길 수 있고, 그 웃음이 공포를 다루는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걸 이 책이 보여줍니다.
귀신 이야기에 관심은 있지만 공포물을 잘 못 보시는 분들께 특히 권하고 싶습니다.
참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6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