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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연 작가의 장편 미스터리 『홍학의 자리』는 불륜과 살인, 그리고 독자 자신의 편견을 정면으로 겨냥하는 소설입니다. 스포가 포함된 리뷰이니, 먼저 읽고 오실 것을 강하게 권합니다.
반전 미스터리의 구조, 그리고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
『홍학의 자리』는 프롤로그부터 범인을 보여줍니다. 한 남자가 사체를 호수에 유기하는 장면으로 문을 열고, "그런데, 다현은 누가 죽였을까?"라는 한 문장으로 프롤로그를 닫습니다. 제가 처음 이 도입을 읽었을 때 든 생각은 "어, 범인이 이미 나왔는데 이게 미스터리가 될 수 있나?"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이 소설의 전략이었습니다.
총 21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작품은 왓더닛(whodunit) 방식을 비틀어 사용합니다. 왓더닛이란 "누가 했는가"를 핵심 질문으로 삼는 추리 서사 구조를 말하는데, 이 소설은 범인을 처음부터 드러낸 채로 "그렇다면 진짜 살인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집니다. 독자는 범인인 줄 알았던 준후를 따라가며 오히려 함께 진실을 추적하게 됩니다.
제가 직접 읽어보니 초반 몇 챕터가 다소 느리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사건 수사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부터는 페이지를 넘기는 손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특히 시체를 욕조에 며칠간 담가 부패 속도를 조절했다는 서술은, 범죄 심리학적으로도 드문 발상이라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범죄 심리학이란 범행 동기·수법·행동 패턴을 분석해 범인의 심리 상태를 추론하는 학문인데, 이 소설 속 준후의 행동은 그 분야의 사례 연구에 올려도 될 만큼 섬세하게 묘사됩니다.
단순히 반전 하나에만 기대는 소설이었다면 읽고 나서 금세 잊혔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해연 작가가 구축한 캐릭터들은 반전과 별개로 충분히 입체적입니다. 준후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추적하면서도 자신의 안위를 먼저 계산하는 장면들, 그 저열한 속내가 너무 사실적이어서 불쾌할 정도였습니다. 그 불쾌함이야말로 이 소설의 진짜 힘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왓더닛(whodunit) 구조를 뒤집어, 범인을 처음부터 보여주면서 "진짜 살인자"를 묻는 이중 서사
- 총 21챕터, 매 챕터마다 긴장을 놓지 않는 스토리텔링 — 읽는 속도가 자연스럽게 빨라짐
- 범행 수법(사체 부패 속도 조절 등)이 범죄 심리학적 개연성을 갖춰 서술되어 있음
- 반전을 제거해도 캐릭터와 플롯만으로 완결성이 유지되는 구조
편견이 만들어낸 반전, 그리고 제가 느낀 것
솔직히 저는 중반부에서 이미 반전을 만났다고 착각했습니다. 다현이 익사로 죽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장면에서, "그럼 준후가 연인을 자기 손으로 죽인 건가?" 싶었거든요. 그게 충분히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거기서 멈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소설은 거기서 한 발 더 나갔습니다.
"가능합니다. 남학생이니까요."
이 문장을 읽은 순간 저는 프롤로그로 다시 읽었습니다. 저수지 표면에 퍼지는 머리카락을 상상할 때, 저는 아무 의심 없이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그렸습니다. 소설 어디에도 다현이 여자라는 말은 없었는데, 불륜의 상대라는 설정만으로 자동으로 여성으로 단정지어버린 겁니다.
이것을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릅니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이 이미 믿고 있는 방향과 일치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반하는 정보는 무의식적으로 걸러내는 심리 현상을 말합니다. 저는 "선생님과 제자의 불륜"이라는 프레임을 받아들이는 순간, 제 머릿속에서 이미 다현의 성별을 결정해버렸고, 그 이후로 모든 묘사를 그 틀 안에서 읽었습니다. 소설이 저를 속인 게 아니라, 제가 저를 속인 셈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단순한 반전 기법이 아닙니다. 독자의 편견을 설계 안에 집어넣어 서사의 도구로 쓰는 내레이티브 트릭(narrative trick)입니다. 내레이티브 트릭이란 서술자의 관점이나 정보 제공 방식을 통해 독자의 인식을 의도적으로 유도하거나 오도하는 기법인데, 정해연 작가는 중의적인 인물 묘사와 사회적 통념을 결합해 이 기법을 완성했습니다. 이 효과는 케이윌의 〈이러지마 제발〉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겪었던 충격과 구조적으로 거의 동일합니다. 맥락을 믿고 따라갔더니 전제 자체가 무너지는 경험.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저는 한참 동안 제 안의 편견을 들여다봤습니다. 불편했지만, 그 불편함이 오래 남는 소설이었습니다. 문학이 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선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정해연 작가는 출처: 교보문고 『홍학의 자리』 상세 페이지에서 스스로 "사람의 저열한 속내나, 진심을 가장한 말 뒤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에 대해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밝혔는데, 이 소설은 그 악의가 타인이 아니라 독자 자신 안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이 작가의 데뷔작 『더블』은 중국과 태국에 수출되었으며, 이번 『홍학의 자리』는 그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한국 미스터리 문학의 서사적 수준이 어디까지 올라왔는지 가늠하고 싶다면, 이 작품이 좋은 기준점이 될 것입니다. 한국 출판 시장에서 미스터리·스릴러 장르는 꾸준히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장르문학 전문 플랫폼과 전통 출판사 모두 이 분야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자주 묻는 질문
Q. 홍학의 자리 스포 없이 읽을 수 있나요?
A. 가능하면 어떤 리뷰도 읽지 않고 바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반전의 방향만 살짝 알아도 중반부 이후의 긴장감이 확연히 줄어듭니다. 이 소설은 모르는 채로 읽는 것이 가장 강렬한 독서 경험을 줍니다.
Q. 초반이 좀 느리다고 하던데, 어디서부터 재밌어지나요?
A. 제 경험상 수사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3~4챕터 이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합니다. 초반의 느린 호흡은 독자를 일상적인 감각에 머물게 하기 위한 장치에 가깝습니다. 조금 버티면 뒷부분이 보상해 줍니다.
Q. 정해연 작가의 다른 작품도 비슷한 스타일인가요?
A. 정해연 작가는 20대에 로맨스를 쓰다 『더블』로 스릴러에 전향한 이후 일관되게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파고드는 방식을 유지해왔습니다. 다만 『홍학의 자리』는 그중에서도 완성도와 반전의 설계 면에서 한 단계 올라선 작품으로 보입니다. 다른 작품들도 가독성이 좋아 부담 없이 읽힙니다.
Q. 이 소설, 불륜 서사가 불편할 수도 있지 않나요?
A. 저도 읽으면서 윤리적으로 편하지 않은 장면들이 분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불륜을 미화하는 방향이 아니라, 그 관계에서 파생된 인간의 이기심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는 방향으로 서술합니다. 불편함이 오히려 이 소설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홍학의 자리』를 다 읽고 나서 한동안 멍한 상태로 있었습니다. 반전이 충격적이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제가 아무 의심 없이 다현을 여자로 그려왔다는 사실, 그 편견이 소설 안에서 이렇게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정해연 작가가 10년 가까이 스릴러 장르를 갈고닦아온 결과물이 이런 형태로 나왔다는 점에서, 다음 작품이 벌써 기대됩니다.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지만 요즘은 읽던 패턴에 익숙해져서 반전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 작품을 권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첫 장을 펼치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을 가장 제대로 읽는 방법입니다.
반전 미스터리의 구조, 그리고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
『홍학의 자리』는 프롤로그부터 범인을 보여줍니다. 한 남자가 사체를 호수에 유기하는 장면으로 문을 열고, "그런데, 다현은 누가 죽였을까?"라는 한 문장으로 프롤로그를 닫습니다. 제가 처음 이 도입을 읽었을 때 든 생각은 "어, 범인이 이미 나왔는데 이게 미스터리가 될 수 있나?"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이 소설의 전략이었습니다.
총 21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작품은 왓더닛(whodunit) 방식을 비틀어 사용합니다. 왓더닛이란 "누가 했는가"를 핵심 질문으로 삼는 추리 서사 구조를 말하는데, 이 소설은 범인을 처음부터 드러낸 채로 "그렇다면 진짜 살인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집니다. 독자는 범인인 줄 알았던 준후를 따라가며 오히려 함께 진실을 추적하게 됩니다.
제가 직접 읽어보니 초반 몇 챕터가 다소 느리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사건 수사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부터는 페이지를 넘기는 손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특히 시체를 욕조에 며칠간 담가 부패 속도를 조절했다는 서술은, 범죄 심리학적으로도 드문 발상이라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범죄 심리학이란 범행 동기·수법·행동 패턴을 분석해 범인의 심리 상태를 추론하는 학문인데, 이 소설 속 준후의 행동은 그 분야의 사례 연구에 올려도 될 만큼 섬세하게 묘사됩니다.
단순히 반전 하나에만 기대는 소설이었다면 읽고 나서 금세 잊혔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해연 작가가 구축한 캐릭터들은 반전과 별개로 충분히 입체적입니다. 준후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추적하면서도 자신의 안위를 먼저 계산하는 장면들, 그 저열한 속내가 너무 사실적이어서 불쾌할 정도였습니다. 그 불쾌함이야말로 이 소설의 진짜 힘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왓더닛(whodunit) 구조를 뒤집어, 범인을 처음부터 보여주면서 "진짜 살인자"를 묻는 이중 서사
- 총 21챕터, 매 챕터마다 긴장을 놓지 않는 스토리텔링 — 읽는 속도가 자연스럽게 빨라짐
- 범행 수법(사체 부패 속도 조절 등)이 범죄 심리학적 개연성을 갖춰 서술되어 있음
- 반전을 제거해도 캐릭터와 플롯만으로 완결성이 유지되는 구조
편견이 만들어낸 반전, 그리고 제가 느낀 것
솔직히 저는 중반부에서 이미 반전을 만났다고 착각했습니다. 다현이 익사로 죽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장면에서, "그럼 준후가 연인을 자기 손으로 죽인 건가?" 싶었거든요. 그게 충분히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거기서 멈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소설은 거기서 한 발 더 나갔습니다.
다현은 남학생이었습니다.
이 문장을 읽은 순간 저는 진짜로 책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프롤로그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읽었습니다. 저수지 표면에 퍼지는 머리카락을 상상할 때, 저는 아무 의심 없이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그렸습니다. 소설 어디에도 다현이 여자라는 말은 없었는데, 불륜의 상대라는 설정만으로 자동으로 여성으로 단정지어버린 겁니다.
이것을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릅니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이 이미 믿고 있는 방향과 일치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반하는 정보는 무의식적으로 걸러내는 심리 현상을 말합니다. 저는 "선생님과 제자의 불륜"이라는 프레임을 받아들이는 순간, 제 머릿속에서 이미 다현의 성별을 결정해버렸고, 그 이후로 모든 묘사를 그 틀 안에서 읽었습니다. 소설이 저를 속인 게 아니라, 제가 저를 속인 셈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단순한 반전 기법이 아닙니다. 독자의 편견을 설계 안에 집어넣어 서사의 도구로 쓰는 내레이티브 트릭(narrative trick)입니다. 내레이티브 트릭이란 서술자의 관점이나 정보 제공 방식을 통해 독자의 인식을 의도적으로 유도하거나 오도하는 기법인데, 정해연 작가는 중의적인 인물 묘사와 사회적 통념을 결합해 이 기법을 완성했습니다. 이 효과는 케이윌의 〈이러지마 제발〉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겪었던 충격과 구조적으로 거의 동일합니다. 맥락을 믿고 따라갔더니 전제 자체가 무너지는 경험.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저는 한참 동안 제 안의 편견을 들여다봤습니다. 불편했지만, 그 불편함이 오래 남는 소설이었습니다. 문학이 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선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정해연 작가는 출처: 교보문고 『홍학의 자리』 상세 페이지에서 스스로 "사람의 저열한 속내나, 진심을 가장한 말 뒤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에 대해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밝혔는데, 이 소설은 그 악의가 타인이 아니라 독자 자신 안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이 작가의 데뷔작 『더블』은 중국과 태국에 수출되었으며, 이번 『홍학의 자리』는 그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한국 미스터리 문학의 서사적 수준이 어디까지 올라왔는지 가늠하고 싶다면, 이 작품이 좋은 기준점이 될 것입니다. 한국 출판 시장에서 미스터리·스릴러 장르는 꾸준히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장르문학 전문 플랫폼과 전통 출판사 모두 이 분야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자주 묻는 질문
Q. 홍학의 자리 스포 없이 읽을 수 있나요?
A. 가능하면 어떤 리뷰도 읽지 않고 바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반전의 방향만 살짝 알아도 중반부 이후의 긴장감이 확연히 줄어듭니다. 이 소설은 모르는 채로 읽는 것이 가장 강렬한 독서 경험을 줍니다.
Q. 정해연 작가의 다른 작품도 비슷한 스타일인가요?
A. 정해연 작가는 20대에 로맨스를 쓰다 『더블』로 스릴러에 전향한 이후 일관되게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파고드는 방식을 유지해왔습니다. 다만 『홍학의 자리』는 그중에서도 완성도와 반전의 설계 면에서 한 단계 올라선 작품으로 보입니다. 다른 작품들도 가독성이 좋아 부담 없이 읽힙니다.
Q. 이 소설, 불륜 서사가 불편할 수도 있지 않나요?
A. 저도 읽으면서 윤리적으로 편하지 않은 장면들이 분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불륜을 미화하는 방향이 아니라, 그 관계에서 파생된 인간의 이기심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는 방향으로 서술합니다. 불편함이 오히려 이 소설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홍학의 자리』를 다 읽고 나서 한동안 멍한 상태로 있었습니다. 반전이 충격적이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제가 아무 의심 없이 다현을 여자로 그려왔다는 사실, 그 편견이 소설 안에서 이렇게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정해연 작가가 10년 가까이 스릴러 장르를 갈고닦아온 결과물이 이런 형태로 나왔다는 점에서, 다음 작품이 벌써 기대됩니다.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지만 요즘은 읽던 패턴에 익숙해져서 반전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 작품을 권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첫 장을 펼치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을 가장 제대로 읽는 방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