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친구랑 술 한 잔 하다가 "우리가 중세 농노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라는 말을 꺼낸 적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비교할 대상도 없고, 그냥 주어진 대로 살면 오히려 더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자조 섞인 농담이었습니다. 그런데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다시 펼쳤을 때, 그 농담이 더 이상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아무것도 모르고 행복한 세계'가 실현된 미래를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인간을 공장에서 찍어내는 세계, 소설이 아니라 예언입니다《멋진 신세계》는 1932년에 출간된 소설입니다. 배경은 수백 년 뒤의 미래지만, 헉슬리가 설계한 세계관의 정밀함은 지금 읽어도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제가 처음 이 책을 읽은 건 학창 시절이었는데, 솔직히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솔직히 저는 1915년에 쓰인 소설이 이렇게 읽힐 줄 몰랐습니다. 100년이 넘은 첩보소설이라길래 시대적 한계가 클 거라 지레 짐작했는데, 막상 펼쳐보니 짧은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었습니다. 존 버컨의 『39계단』,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마지막 장을 덮게 만드는 소설입니다.1910년대 배경 — 이 소설이 태어난 맥락『39계단』이 출판된 1915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입니다. 저자 존 버컨(John Buchan, 1875~1940)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작가이자 실제 정치인이었는데, 이 배경이 소설 전체에 짙게 깔려 있습니다.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라, 유럽 열강 간의 첩보전이라는 실제 역사적 맥락 위에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여기서 첩보전이란 국가 기밀을 탈취하거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괴물이라고 부르는 쪽이 실은 괴물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리처드 매드슨의 1954년작 『나는 전설이다』를 다 읽었을 때, 제가 가장 먼저 느낀 건 공포가 아니라 당혹감이었습니다.흡혈귀 소설인데 진짜 무서운 건 따로 있었다학생 때 심리학 수업에서 직접 진행해 본 실험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발목 높이쯤에 보이지 않는 실이 있는 것처럼 발을 살짝 들어 넘기는 동작을 먼저 하면, 뒤따라 내리는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똑같이 발을 들어 넘기는지를 확인하는 거였습니다. 결과는 꽤 선명했습니다. 대다수가 따라 했고, 오히려 따라 하지 않은 사람이 어색해 보일 지경이었습니다.이 경험이 『나는 전설이다』를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로버트 네빌은 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