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로또를 삽니다. 당첨 확률이 814만 분의 1이라는 걸 알면서도 손이 갑니다. 가능성이 0%가 아니라는 것,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 포기가 안 됩니다. 『지옥에서의 짧은 체류』를 읽으면서 그 기분이 떠올랐습니다. 이 소설의 지옥은 불도 없고 고통도 없습니다. 대신 탈출구가 딱 하나 있고, 그 가능성이 0이 아닙니다. 그래서 더 무섭습니다.희망고문: 가능성이 0이 아닐 때 더 잔인한 이유이 소설의 지옥 탈출 조건은 단순합니다. 우주 규모의 도서관 어딘가에 꽂혀 있는, 내 인생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기록한 단 한 권의 책을 찾아 반납 슬롯에 넣으면 됩니다. 여기서 핵심은 이 도서관이 '무한'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무한이란 끝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뜻하는데, 이 도서관은 그렇지 않습니다. 끝이..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어도 주변 시세보다 싸다면 살겠냐는 질문에, 저는 주저 없이 "부동산이 더 무섭지. 당연히 살아야지."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전건우 작가의 신작 《죽은 집에 관한 기록》을 읽고 나서는 그 대답을 한 번 더 곱씹게 됐습니다. 이 소설이 다루는 공포는 단순히 귀신이 나오는 집이 아니라, 빌라 전체를 집어삼키는 무차별적 저주이기 때문입니다.하우스 호러가 가장 무서운 이유이 소설은 이메일, CCTV 녹화본, 통화 녹취, 인터뷰 같은 기록 형식으로 구성됩니다. 여기서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기법이라는 말을 씁니다. 파운드 푸티지란 실제로 발견된 영상이나 문서처럼 꾸며 현실감을 극대화하는 서사 장치인데, 이 소설은 영상 매체가 아닌 텍스트에서 그 효과를 구현해냅니다...
바다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한참 수영하다 문득 발밑을 내려다본 적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깊은 물속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전건우 작가의 『어두운 물』을 읽으면서 그 기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났습니다. 수귀(水鬼)라는 소재를 단순한 귀신 이야기로 끝내지 않고, 인간의 어두운 본성까지 파고드는 정통 K-호러입니다.강물이 품은 이야기 — 수귀 전설과 소설의 배경혹시 물에서 느끼는 공포가 단순히 깊이 때문만은 아니라고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 위에 둥둥 떠 있을 때, 내 발밑이 어느 정도인지 감각을 완전히 잃는 느낌이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구명조끼덕분에 안전하다는 것을 알지만, 어딘가 계속 불안해지는 그 감각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따라붙었습니다.『어..
세스지의 데뷔작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일본에서 출간 즉시 30만 부를 돌파하고 한국에 상륙한 이 책의 정체를 제가 직접 읽으면서 느낀 대로 풀어보겠습니다.모큐멘터리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혹시 "모큐멘터리(Mockumentary)"라는 장르를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모큐멘터리란 허구의 이야기를 마치 실제 다큐멘터리처럼 연출하는 기법을 말합니다. 즉, 꾸며낸 이야기임에도 인터뷰 영상, 문서 자료, 증언 형식을 빌려 현실감을 극대화하는 방식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로 쓰이던 이 기법을 소설에 이식했다는 점이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가장 흥미로웠습니다.『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는 잡지 기사, 인터넷 커뮤니티 글, 목격자 인터뷰, 독자 제보 등을 시간 순서와 무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