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카세트테이프가 무서울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있으십니까? 저는 어렸을 때 자기 전에 영어 소설을 읽어주는 테이프를 틀어놓고 잠을 청하던 아이였습니다. 나른한 남자 성우의 목소리와 위잉 돌아가는 릴 소리가 백색소음이었고, 테이프 한 면이 끝날 때 탁 소리에 살짝 눈이 떠지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전건우 작가의 신작 『믹스테이프』를 읽으면서 그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만약에 익숙한 그 탁 소리 직후에 낯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면, 저는 그날 밤 절대로 잠들지 못했을 겁니다.카세트테이프라는 매체가 왜 공포가 되는가아날로그 매체가 공포 장치로 쓰인 사례는 꽤 있습니다. 그런데 『믹스테이프』가 특별한 건 카세트테이프 특유의 물성, 그러니까 A면과 B면이라는 양면 구조 자체를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기숙사에서 혼자 불 끄고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제 방이 완전히 낯선 공간처럼 느껴졌던 적이 있습니다. 전건우 작가의 신작 『어두운 집』은 바로 그 감각에서 시작합니다. 그 서늘한 감각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계속 떠올랐습니다.도깨비터 위에 세워진 집, 그 팩트들『어두운 집』은 전건우 작가의 '어둠 3부작' 마지막 편입니다. 『어두운 물』, 『어두운 숲』에 이어 이번에는 '집'이라는 공간을 무대로 삼았습니다.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세 주인공, 사이코메트리 작가 민시현과 무당 윤동욱, 옥도령이 다시 등장합니다.여기서 사이코메트리란 물체나 장소에 남겨진 감정·기억을 손으로 접촉해 읽어내는 초감각적 능력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민시현은 공간에 깃든 과거의 잔상을 몸으로 직접 받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어도 주변 시세보다 싸다면 살겠냐는 질문에, 저는 주저 없이 "부동산이 더 무섭지. 당연히 살아야지."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전건우 작가의 신작 《죽은 집에 관한 기록》을 읽고 나서는 그 대답을 한 번 더 곱씹게 됐습니다. 이 소설이 다루는 공포는 단순히 귀신이 나오는 집이 아니라, 빌라 전체를 집어삼키는 무차별적 저주이기 때문입니다.하우스 호러가 가장 무서운 이유이 소설은 이메일, CCTV 녹화본, 통화 녹취, 인터뷰 같은 기록 형식으로 구성됩니다. 여기서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기법이라는 말을 씁니다. 파운드 푸티지란 실제로 발견된 영상이나 문서처럼 꾸며 현실감을 극대화하는 서사 장치인데, 이 소설은 영상 매체가 아닌 텍스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숲은 힐링의 공간이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전건우의 신작 《어두운 숲》을 읽고 나서, 저는 숲에 대한 그 통념을 완전히 뒤집게 됐습니다. 일반적으로 산과 숲은 한국인에게 친숙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소설 속 '어두운 숲'은 랜턴 하나로도 밝힐 수 없는 어둠이 도사리는 곳입니다. 전작 《어두운 물》을 재밌게 읽었던 터라 주저 없이 집어 들었습니다.고스트 투어, 왜 굳이 거기를 가는가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설마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겠어'라고 생각합니다. 공포 영화를 볼 때도, 귀신 나온다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도, 그 죽음과 공포는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죠. 제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도 바로 그 지점이..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바다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한참 수영하다 문득 발밑을 내려다본 적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깊은 물속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전건우 작가의 『어두운 물』을 읽으면서 그 기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났습니다. 수귀(水鬼)라는 소재를 단순한 귀신 이야기로 끝내지 않고, 인간의 어두운 본성까지 파고드는 정통 K-호러입니다.강물이 품은 이야기 — 수귀 전설과 소설의 배경혹시 물에서 느끼는 공포가 단순히 깊이 때문만은 아니라고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 위에 둥둥 떠 있을 때, 내 발밑이 어느 정도인지 감각을 완전히 잃는 느낌이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구명조끼덕분에 안전하다는 것을 알지만, 어딘가 계속 불안해지는 그 감각이 이 소설을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어디서부터가 꿈이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거든요. 전건우 작가의 신작 《굿나이트메어》는 디지털 치료제(DTx)라는 현실 속 기술을 배경으로, 치료와 공포의 경계가 얼마나 얇은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심리 스릴러입니다. 유령도, 살인마도 없는데 읽는 내내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디지털 치료제, 이게 정말 치료일까요?소설을 읽기 전에 디지털 치료제(DTx, Digital Therapeutics)라는 개념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여기서 DTx란 소프트웨어·앱·콘텐츠를 통해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디지털 기반 의료 행위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알약 대신 앱이 처방되는 시대가 이미 열리고 있다는 겁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저주 전파 — 행운의 편지와 흉담의 구조제가 초등학생 때 행운의 편지라는 게 유행했습니다.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로 시작하는 그 편지는 일주일 안에 7명에게 전달하지 않으면 불행이 찾아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받는 순간 이미 불편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결국 친구들에게 넘기게 되는 구조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저주의 기본 작동 방식이었습니다.《흉담》의 핵심 설정도 동일한 논리 위에 서 있습니다. 자정까지 두 사람에게 흉담을 전달하지 않으면 악귀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저주의 전파 메커니즘입니다. 메커니즘(mechanism)이란 어떤 현상이 작동하는 구체적인 원리를 뜻하는데, 흉담의 경우 두려움 자체가 전파를 유도하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