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1994년 뉴베리상을 수상한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가 국내 누적 30만 부를 넘어섰습니다. 처음 이 수치를 보고 솔직히 조금 놀랐습니다. 청소년 SF 소설이 30년 가까이 꾸준히 읽힌다는 건, 단순히 "잘 쓴 소설"이라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한 뭔가가 있다는 뜻이니까요. 제가 직접 읽어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이 책은 완벽해 보이는 통제 사회 속에서 감정과 기억을 되찾아가는 한 소년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지금 우리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질문이기도 했습니다.통제사회의 민낯, 디스토피아란 무엇인가『기억 전달자』의 배경은 표면상 이상적인 미래 마을입니다. 출산, 직업, 가족 구성, 심지어 감정까지 모두 중앙에서 결정됩니다. 갈등이 없고, 차별이 없으며, 모두가 '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올 여름, 뉴스를 보다 문득 손을 멈춘 적이 있습니다. 또 어딘가에서 폭염 기록이 깨졌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과학 상상화에 그렸던 날아다니는 자동차나 해저도시는 어디 갔는지, 막상 현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답답함이 채 가시기 전에 집어 든 책이 바로 안전가옥 앤솔로지 〈대멸종〉이었습니다.앤솔로지 〈대멸종〉이 담고 있는 것들〈대멸종〉은 2018년 겨울 안전가옥 스토리 공모전 수상작 다섯 편을 묶은 앤솔로지입니다. 여기서 앤솔로지란 여러 작가의 단편을 하나의 주제로 엮어 출간한 작품집을 뜻합니다. 안전가옥이 이미 〈냉면〉으로 첫 앤솔로지를 선보인 바 있으니 이 책은 두 번째 시도인 셈입니다.수록작 다섯 편은 공통적으로 '한 세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귀엽다는 감각이 과연 절대적인 것일까요. 제가 어릴 때 장터에서 본 강아지는 뾰족한 주둥이에 아기 늑대 같은 얼굴이었는데, 그게 너무 귀여워서 한참을 들여다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설재인의 소설 『셸리 숍앤센터』를 읽고 나서야 그 감각이 얼마나 조건화된 것인지 새삼 의심하게 됐습니다. 버려진 인체 기관들을 이어 붙여 만든 반려동물 '프랑'이라는 설정은, 읽는 내내 불편하면서도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바디 호러가 불편한 이유바디 호러란 신체의 변형·훼손·해체를 공포의 핵심 기제로 삼는 장르입니다. 여기서 바디 호러란 단순히 내장이 튀어나오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당연하게 여기는 몸의 완전성과 경계가 무너지는 데서 오는 근원적 불안을 자극하는 서사 전략을 뜻..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괴물이라고 부르는 쪽이 실은 괴물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리처드 매드슨의 1954년작 『나는 전설이다』를 다 읽었을 때, 제가 가장 먼저 느낀 건 공포가 아니라 당혹감이었습니다.흡혈귀 소설인데 진짜 무서운 건 따로 있었다학생 때 심리학 수업에서 직접 진행해 본 실험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발목 높이쯤에 보이지 않는 실이 있는 것처럼 발을 살짝 들어 넘기는 동작을 먼저 하면, 뒤따라 내리는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똑같이 발을 들어 넘기는지를 확인하는 거였습니다. 결과는 꽤 선명했습니다. 대다수가 따라 했고, 오히려 따라 하지 않은 사람이 어색해 보일 지경이었습니다.이 경험이 『나는 전설이다』를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로버트 네빌은 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