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그냥 지나쳤습니다. '눈알이 제일 맛있단다'라니, 너무 자극적인 거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책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1993년생 한국계 작가 모니카 김의 데뷔 소설이 브램 스토커상을 수상하고 《타임》 100대 필독서에 이름을 올린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저녁 식탁에서 시작된 이야기 — 이 소설의 배경밥상에서 누군가가 생선 눈알을 꺼내들 때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있으신가요? 모니카 김 작가는 바로 그 장면에서 이 소설을 시작했습니다. 한국 가정의 저녁 식탁이라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에서 공포가 싹튼다는 설정이 기묘하게 친근하게 느껴집니다.소설의 첫 문장은 "엄마는 항상 눈알이 제일 맛있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괴물이라고 부르는 쪽이 실은 괴물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리처드 매드슨의 1954년작 『나는 전설이다』를 다 읽었을 때, 제가 가장 먼저 느낀 건 공포가 아니라 당혹감이었습니다.흡혈귀 소설인데 진짜 무서운 건 따로 있었다학생 때 심리학 수업에서 직접 진행해 본 실험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발목 높이쯤에 보이지 않는 실이 있는 것처럼 발을 살짝 들어 넘기는 동작을 먼저 하면, 뒤따라 내리는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똑같이 발을 들어 넘기는지를 확인하는 거였습니다. 결과는 꽤 선명했습니다. 대다수가 따라 했고, 오히려 따라 하지 않은 사람이 어색해 보일 지경이었습니다.이 경험이 『나는 전설이다』를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로버트 네빌은 핵..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회사에서 탕비실을 쓸 때, 누군가의 행동이 유독 거슬렸던 적 있으십니까? 저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제가 그 '거슬리는 사람'이었을 가능성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미예 작가의 신작 《탕비실》은 바로 그 불편한 가능성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소설입니다.사무실 빌런은 항상 자기가 빌런인 줄 모릅니다직장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평판이 존재합니다. 여기서 평판이란 단순히 업무 능력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저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어떤가'에 대해 동료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형성된 인상을 말합니다. 옆자리에서 손톱을 깎거나, 식탐을 부리거나, 사무실 전화가 와도 항상 자리를 비우는 사람들이 빌런으로 지목되곤 하는데, 저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런 사람을 한두 명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소설이 추리소설이라는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인공이 바로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였습니다. 103개 국어로 번역된 이 작품을 직접 읽고 나서야, 그 수식어가 과장이 아니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밀실 미스터리의 완성형, 인디언 섬의 구조『그리고 아무도 없었다』(And Then There Were None, 1939)는 이른바 밀실 미스터리(Closed Circle Mystery)의 교과서로 불립니다. 여기서 밀실 미스터리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공간에 용의자들을 가두고, 그 안에서 사건을 전개하는 구조를 말합니다. 탈출구도, 외부 구조도 없는 섬이라는 설정이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어도 주변 시세보다 싸다면 살겠냐는 질문에, 저는 주저 없이 "부동산이 더 무섭지. 당연히 살아야지."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전건우 작가의 신작 《죽은 집에 관한 기록》을 읽고 나서는 그 대답을 한 번 더 곱씹게 됐습니다. 이 소설이 다루는 공포는 단순히 귀신이 나오는 집이 아니라, 빌라 전체를 집어삼키는 무차별적 저주이기 때문입니다.하우스 호러가 가장 무서운 이유이 소설은 이메일, CCTV 녹화본, 통화 녹취, 인터뷰 같은 기록 형식으로 구성됩니다. 여기서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기법이라는 말을 씁니다. 파운드 푸티지란 실제로 발견된 영상이나 문서처럼 꾸며 현실감을 극대화하는 서사 장치인데, 이 소설은 영상 매체가 아닌 텍스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집 평면도를 볼 때 이상한 걸 찾아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네모난 선들이 그려진 종이 한 장에서 공포를 느끼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요. 일본에서 30만 부를 돌파하고 영화화까지 확정된 우케쓰의 소설 《이상한 집》, 제가 읽고 나서 느낀 걸 그대로 풀어보겠습니다.평면도 한 장이 어떻게 공포가 됐나2020년, 일본의 정체불명 유튜버 우케쓰가 올린 영상 하나가 조회 수 1,000만 뷰를 돌파했습니다. 전신 검정 타이즈에 흰 가면을 쓴 이 크리에이터는 나이도, 성별도, 거주지도 공개하지 않은 채 오로지 주택 평면도 한 장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구독자 65만 명, 누적 조회 수 7,000만 뷰를 기록한 채널이지만 실체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제가 처음 이 책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죽기 직전 연결된 신이 첫 마디로 꺼낸 건 구조 방법이 아니라 자기 과거사였습니다. 제가 이 설정을 읽었을 때 피식 웃음이 나왔는데, 그게 이 소설의 핵심이기도 했습니다.신에게도 절차가 있다 — K-오컬트와 본풀이 형식혹시 '본풀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본풀이(本풀이)란 제주 무속 신화에서 신의 내력과 탄생을 풀어내는 이야기 형식입니다. 쉽게 말해 신이 어떻게 그 신이 되었는지를 읊어주는 구술 신화인데, 굿판에서 신을 소환하려면 먼저 그 신의 내력을 읊어야 한다는 전통에서 비롯됩니다. 김해솔 작가는 이 형식을 그대로 가져와 현대 소설에 이식했습니다.『슬라임도살자 본풀이』의 화자는 본명 지장(地藏), 활동명 슬라임도살자입니다. 지장이라는 이름은 '땅에 묻는다'는 의미를 품..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책을 받아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이게 책이 맞나?"였습니다. 가로 8.6cm, 세로 16.5cm. 손 안에 쥐어지는 크기가 딱 스마트폰이었거든요. 치넨 미키토의 『스와이프 엄금』은 책의 물리적 형태부터 독서 경험 자체를 완전히 바꿔놓으려는 실험작입니다. 그 실험이 성공했는지, 저는 직접 읽고 나서야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모큐멘터리 형식, 소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스와이프 엄금』은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모큐멘터리 호러 소설입니다. 모큐멘터리(Mockumentary)란, 다큐멘터리처럼 실제처럼 보이게 연출한 허구의 이야기를 말합니다. 영화에서는 관객이 "이게 진짜일 수도 있다"는 감각 때문에 더 무섭게 느끼도록 설계하는 장르 기법입니다. 이 소설은 그 감각을 종이책..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한국 귀신 서른한 종류를 한 권에 담은 책이 있습니다. 공격력·방어력·오싹력 수치까지 게임처럼 정리해놨는데, 퇴치 방법 항목에 "안타깝게 없다"고 적힌 귀신이 버젓이 실려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피식 웃으면서도, 어릴 때 화장실 변기에 오래 앉지 못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올라왔습니다.귀신 도감처럼 펼쳐지는 구성, 직접 읽어보니『한국귀신이야기사전』은 작가 문화류씨의 세 번째 단편집입니다. 홍콩할매, 홍대 저주 인형, 장산범, 손각시 등 서른한 종류의 귀신을 소개하고, 각 귀신에 얽힌 단편 소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았습니다. 여기서 옴니버스란 독립된 여러 이야기를 하나의 책 안에 묶은 구성 방식을 의미합니다. 각 에피소드가 연결되지 않아 어느 순서로 읽어도 무방하고, 출퇴..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화장실에서 물을 내리는데 변기 속에서 누군가 말을 건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이 장면을 읽고 나서 의식적으로 며칠간 변기 뚜껑을 닫아두었습니다. 정보라의 소설집 《저주토끼》는 그런 책입니다.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 오른 데다 전 세계 20개국에 번역 계약이 맺어진, 숫자만 보면 화려한 이력이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그 어떤 수식어도 이 책의 기묘함을 온전히 담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부커상 인터내셔널 후보작, 어떤 책인가요?부커상 인터내셔널(Booker International Prize)은 영어권 밖에서 쓰인 소설을 영어로 번역·출판한 작품에 수여하는 상입니다. 쉽게 말해 비영어권 문학이 전 세계 독자와 만나는 가장 권위 있는 관문 중 하나로, 이 ..
